믿음혁명, 일상에서부터 시작
사순절 기간을 변화의 시기로
주일 아침이면 경건한 마음으로 어제저녁 준비해 둔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예배에 참석한다. 회개와 감격의 기도를 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말씀에 감동한다. 찬양대의 찬송은 감미로움 그 자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어찌 그리 내 마음을 꼭꼭 집어내는지, ‘아멘’을 연발한다. 전날 챙겨둔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고 축도까지 받은 후 교회 문을 나선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가족과 함께 자가용에 올라 도로로 나서자 갑자기 웬 초보운전 차량이 길을 막아선다. 속에서 ‘욱’하는 것이 치밀고 올라온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점심식사도 해야하고, 지난주 놓친 드라마의 재방송도 봐야 하는데 좀처럼 길을 터줄 생각을 않는다.
조급한 마음에 경적을 울린다. 곧 초보운전자의 차를 추월해 창문을 내려 쏘아본 후 그대로 달린다. 욱하고 올라온 것이 조금 심하면 여기서 머물지 않고 욕설 한마디를 덧붙인다.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한다. 새로운 일상의 시작이다. 급하게 아침밥을 먹은 후 집을 나선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사정이 딱한 가난한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돈을 내어 줄 생각은 하지 못한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식사를 한 후에는 짬을 내 주식시황을 들여다보고 오후에는 회사 내 경쟁자를 제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낸다.
조금 과장된 일과일까? ‘설마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럴까?’라고 하겠지만, 기독인 대부분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한다. ‘어떻게 그리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대한민국의 1/4 이상이 크리스천인 이 나라가 빛과 소금으로 들어차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이를 역설하고 있다.
급변하는 경쟁사회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기독인의 삶에 요구되는 기대는 쉽게 묻혀버린다. 일터와 기독교 신앙은 별개의 문제이고, 친구나 부부관계, 자녀교육,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경제윤리 등에서 신앙으로 인한 갈등을 겪지만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지적하지만, 내 잘못은 보지도 못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과 잘못에 대해 쉽게 말하고 웃음거리로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과 교회는 사랑과 희락 화평 겸손 온유 절제 자비 정의 등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크리스천을 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지금이 바로 우리가 변화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