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간구, 모든 가족 구원받아
간절히 기도할 때 기적 일어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을 거닐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타락 후 영이 죽어버리자 하나님과의 대화는 단절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막혔던 대화의 길이 열렸는데 바로 기도이다.
기도의 올바른 모형은 성경에 나와 있다. 병든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는 말씀에 의지한다. 또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구할 때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성경말씀을 붙든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우리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우리는 환경이 변하거나 우리 혹은 주변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에도 기도로 인해 변화된 다양한 예가 나온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는 대장정 중에 기적같은 일을 겪는다. 여호수아 대장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아말렉 군대와 대치할 때다. 객관적 전세는 이스라엘이 불리했다. 오랜 여행으로 체력이 많이 저하됐고 무기 또한 부실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 두손을 들고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임해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을 무찌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기도하던 모세의 두손이 내려가자 전세는 역전된다. 그러자 아론과 훌이 각각 모세의 팔을 하나씩 붙잡아 기도를 계속하도록 돕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둔다.
사람의 마음도 간절한 기도 앞에 변화된다. 한 도시에 과부가 있었다. 하루는 그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 이를 고소하러 재판관을 찾아갔는데, 그는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이었다. 하지만 그 과부는 쉬지않고 찾아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매달렸고, 결국 그 재판관은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예수님을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간절한 간구로 온가족이 구원받기도 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점탐을 위해 싯딤에서 두 사람을 보냈다.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유숙했다. 이 소식이 여리고왕에게까지 알려져 왕에게 불려갔지만 이미 떠났다고 고한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지붕 위 삼대에 숨긴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이 겪는 기적같은 일을 듣고, 여리고 땅 역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라합은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달라”고 간구한다.
라합이 가족을 위하는 마음을 이미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 일로 라합과 그 가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기도는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기도제목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믿지 않은 가족구원부터 시작해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지도 큰 과제다. 먼 안목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구원과 대우개선, 핵 보유 사실을 발표해 국제사회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북한문제, 그리고 전 세계에서 고난받는 기독교인들까지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성경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모든 응답과 해결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