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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주는 교훈 - 성서학자가 본 쓰나미

“능하신 주의손 아래서 믿음 지키는 성도 돼야”

 

선택받은 백성에게는 언제나 경고 사인 보내
주의 날에 대한 확고한 소망으로 신앙생활을


 지난해 12월 26일 발생한 남아시아의 지진해일(쓰나미)은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세기적 사건이 되었다. 해일을 일으킨 수마트라 지진은 그 충격파가 지구 전체에 수 시간 동안 퍼져나갔고 지구 반대편 높이를 거의 2㎝ 이상 상승시켰다는 연구 보고가 나올 정도로 그 규모나 피해 면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대지진이었다.
 대재앙이 발생한 지역이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비기독교 지역이기에 이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종교적 입장을 내세운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나름대로 종교적 편견을 보이는 해석들로 인하여 피해 지역 내에서는 구호 단체들 간의 종교적 갈등마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구호단체들이 극렬 회교도인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 세력에서부터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 지역의 지진해일 참사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아가려는 입장이 있는가하면 이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이 팽팽히 맞설 정도로 이 사건은 종교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물론 비기독교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아가기에는 상당한 무리함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종말적 메시지는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따라서 성서적 관점에서 이 사건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성서적 조명을 위해서 구약에 나타난 대자연 재앙 사건을 우선 살펴보아야 한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을 보시고 홍수를 통하여 세상을 심판하셨다(창 6장).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셨다(창 19:24∼25).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약의 심판 이야기이지만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구약의 두 사건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선택한 백성에게 먼저 경고하시고 난 후에 재앙을 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심판에 대하여 경고한 후에 방주를 만들 것을 지시하셨다(창 6:13∼14).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미리 심판에 대하여 알려주셨고 이에 아브라함은 의인 십 인만 있어도 멸하지 말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였다(창 18:16∼33).
 구약의 두 사건을 신약에 기록된 심판의 메시지와 비교하여 볼 때 독특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신약에 언급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도적같이 소리없이 급작스럽게 그리고 홀연히 임한다(살전 5:2∼3). 무엇보다도 심판의 그날은 아들도 모르게 임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점을 다시 한번 상기 시키신다(행 1:7).
 신약에서 말하는 심판의 그 날은 왜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진 채 홀연히 임하여야만 하는가? 하나님의 절대 권한에 속한 일이지만 성서를 통하여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사도행전 17장 31절에 의하면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는 물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이미 확실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서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그 날은 급작스럽게 임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주의 날이 홀연히 예고없이 임할 수 있는 두 번째 가능한 이유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길이 참아 오셨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작정하시고 시행할 수 있음에도 아직 그 날이 임하지 않고 있음은 하나님께서 지금 심판의 그날을 늦추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8절부터 9절에서 하나님께서 오랫 동안 참아 오셨다는 점에 대해서 경고한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함이다 (벧후 3:9). 하나님의 시간 계획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인하여 수정되고 있다. 그러나 주께서 오실 때는 도적같이 홀연히 임할 것이다 (벧전 3:10).
 이러한 말씀에 근거하여 남아시아 지진 해일을 살펴보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구의 지축을 흔들 정도의 강력한 지진과 해일이 순식간에 상상을 초월한 피해를 초래하였다는 것은 성서에 기록된 심판의 재앙들이 언제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기만 하면 이보다 더 큰 재앙이 얼마든지 순식간에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비추고 있다.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는 자연 현상이 가져다주는 재앙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께만 가능하고 그래서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잠재성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재앙이 남아시아에서 발생하였다고 하여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무관하다고 보아서는 아니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전세계가 이 일에 관심을 보이고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은 세상에 임하는 종말 사건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종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쓰나미와 같은 엄청난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세계의 인류가 그러한 재앙의 재발을 두려워하는 지금은 분명히 종말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이다. 지진과 해일의 피해자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이러한 엄청난 참화가 일어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또한 지진 피해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힘 앞에 굴복해야 했다. 지금 세계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인간적인 영역에서는 물론 자연, 기후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너무나 급변하고 있다. 그래서 쓰나미는 주의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현재 우리에게 경고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므로 금번 사건을 계기로 믿는 신자들은 깨어서 모두가 그 날에 대비하여야 한다. 그 날이 점점 더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5절에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오심이 멀지 않은 장래에 임박해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의미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29절에서 ‘때가 단축하여졌다’고 말한다. 단축이라는 말은 우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의 존속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주의 날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증거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를 심판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서 그 날에 대비 해야겠다(요 12:48).


순신원 도서관장, 신약학 교수

 

기사입력 : 2005.01.21. pm 17:53 (편집)
이소흔기자 (shlee@fgt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