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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교육으로 복음전파한 아펜젤러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한 감리교 아펜젤러 목사는 우선 교육사업부터 시작했다.
 8월부터 스크랜튼이 소개한 이겸나, 고영필 두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 이들이 외국공관 통역관으로 기용되자 학생들은 점차 늘었다. 이듬해 6월 고종은 ‘배재학당’이라고 이름지어 교명을 직접 써서 하사했다. 오늘날 배재중·고등학교의 전신이다. 당시 배재학당에 설치되었던 인쇄부는 독립신문이 인쇄되는 등 한국 현대식 인쇄 시설의 효시다.
 아펜젤러는 한국청년운동에도 큰 공을 남겼다. 갑신정변 때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1896년)한 서재필과 손잡고 기독교청년운동을 벌였으며 독립협회 운동도 적극 후원하였다. 1899년부터는 언더우드와 함께 YMCA운동을 주도, 1901년에는 배재에 최초로 학생YMCA가 설립되기도 했다.
 아펜젤러 장남은 배재학교 교장으로, 장녀는 이화학당 교장으로 봉직하다 한국 땅에 묻혔으며 막내 역시 이화학교 교수로 한국선교에 헌신하였다.


글·이소흔/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5.01.21. pm 17:25 (편집)
이미나 기자기자 (mnlee@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