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부교(구세군 서울 후생관 안전관리 담당)

구세군에 들어와 그리스도 영접
98년부터 6년간 제작·수리 맡아
40년만에 자선냄비 독일산 교체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에는 난파선의 승객과 선원들이 구세군 회관을 찾아 도움을 청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한 여사관이 기지를 발휘했다.
 큰 냄비를 걸어놓고 “굶주림에 떨고 있는 조난당한 사람들을 위해 이 냄비를 끓게 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한 것이다. 의외의 호응에 힘입어 이 행사는 이웃돕기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세계 100여개 국에서 자선냄비에 온정이 베풀어지고 있다.
 겨우살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높아지는 요즘, 차가운 풍경을 그나마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은 구세군의 자선 냄비 종소리다. 올해도 자선냄비는 어김없이 2일부터 등장해 전국 76개 지역에서 구세군들이 사랑을 호소하는 종을 울린다.
 특히 금년에는 모금함의 모양이 직사각형에서 사다리꼴로 바뀌어 실제 냄비에 가깝게 철제로 매끔하게 제작됐다. 양철로 만들어진 기존의 자선냄비가 40년만에 독일 주방업체에서 기증한 냄비로 새롭게 교체된 것이다.
 새로운 자선냄비의 등장으로 예년과 달리 조용한 겨울을 맞이한 기능공이 있다. 98년부터 작년까지 6년간 자선냄비를 제작·보수해온 김광호 부교(구세군 계급)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구세군 서울후생관으로 찾아갔다.
 서울후생관 입구에는 철제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방문하는 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후생관을 따라 운동장을 지나니 사택이 나왔다. 사택 벽면에는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이 모두가 김광호 부교의 작품이라고 한다. 올 겨울, 허전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선냄비 작업을 안하니 심신은 편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김 부교의 냄비 이야기를 들어본다.
 “12월이 가까이 오면 늘 마음이 바빠졌어요. 보통 11월 초부터 일감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냄비를 완성하기까지 한달 꼬박 걸립니다. 이 기간엔 하루 6시간 자고 14시간정도 일을 했어요. 하루는 코피를 쏟았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음료수병으로 하나 가득 됐을 겁니다”라고 회고하며 김 부교는 그 시절이 그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김광호 부교는 원래 건축인테리어 사업을 했었다. 집이든 교회든 심지어는 절이든 부르는 곳이 있으면 가서 수리 보수 등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전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1986년부터는 이상하게도 사회복지단체에서 공사 주문이 들어왔어요. 입소문이 났는지 사회복지단체 공사가 이어지게 됐죠. 95년에 구세군건물 수리를 하게 됐는데 10월부터 하던 공사가 다음해인 4월이 되서야 마칠 수가 있었어요. 공사를 마치자 당시 후생학원 원장님이 앞으로 계속 건물을 관리해 달라는 권유로 사택에 들어오게 됐어요” 김 부교는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인 후생관 사택에서 안전관리직을 맡아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사택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당시 총무보시던 이가 어디론가 급히 가시길래 따라갔더니 교회더라구요. 그때 설교 말씀이 저의 가슴을 ‘쿵’하고 두드리는 거예요” 김 부교는 그 다음날에도 또 다음에도 계속 예배에 참석했다.
 “믿음이 생기니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 이 만큼 멋진 것은 없다는걸 깨달았죠. 이 고마움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제가 받은 축복을 고아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소망이 생겼났습니다”
 1998년 대한본영 사회부에서 김 부교에게 자선냄비를 수리해 달라는 부탁이 왔다.
 “대한본영에서 가져온 자선냄비들을 보니깐 처음엔 기가 막히더군요. 냄비 크기나 글자체가 균등하지 않았어요”
 김 부교는 우선 냄비들을 일정한 크기로 만들었다. 대한본영에서도 마음에 들어하면서 그때부터 자선냄비 제작과 수리 일을 김 부교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매년 56개의 자선냄비가 김 부교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됐다.
 “우선 56개 자선냄비가 나가면 항상 추가 제작이 들어왔어요. 한해 70개 정도의 냄비들을 직접 두들겨서 내보냈어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냄비를 두드리면서 성의껏 만들었어요. 제 기술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선냄비 제작만이 아니라 냄비걸이 세다리가 이동 등에 불편했던 것도 고려해 접이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자신이 만든 자선냄비에 기부금을 냈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 지 궁금했다.
 “일반인들은 모금통에 그저 선한 마음으로 기부하겠지만, 저는 돈을 넣으면서도 자선냄비를 살피게 되더군요. 혹 잘못된 곳은 없는지 꼼꼼히 훑어보고, 그냥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 버릇이 생겼죠. 직업병인가요?”라고 물으며 웃음을 던지는 김 부교. 그는 자신의 손 때가 가득 담긴 자선냄비들을 모두 본영으로 돌려보냈다. 폐기처리 되지 말고 박물관이라도 생겨서 보관되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작은 바람이다.
 “아쉬워서 원래 크기보다 1/100정도로 축소한 작은 자선냄비들을 만들고 있어요. 지난번에 28개의 작은 냄비를 만들었죠. 아는 구세군들에게 선물로 줬더니 너무나 좋아하더라구요”
 시대가 변했다. 자선냄비도 바뀌었다. 김 부교는 자선냄비 모양이 바뀌더라도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은 변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능력이 계속 필요하다면, 어떠한 일이든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웃사랑이 넘쳐나서 자선냄비가 필요 없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빨간 자선냄비는 오는 24일 밤 11시까지 거리에서 아름다운 손길을 기다린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