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시대 그리스도… 죽음 극복하는 존재

어린양,박해시대 이후 구속적 의미로
지하 묘지 교회 벽 석관 장식에 나타나

 초기 예술의 대부분은 지하 묘지나 교회의 벽, 유해를 담은 석관의 장식에 나타난다. 기독교 박해시대에 기독교인의 거의 유일한 기쁨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기쁨과 신앙고백이 그들의 예배와 예술, 죽음, 공동체 생활로 표현되었다. 특히 기독교 공동체의 생활은 문서뿐만 아니라 선한 목자와 어린양, 종려나무, 빵, 포도주, 포도나무와 포도열매 등의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선한 목자는 그의 양어깨에 양을 업은 모습으로 흔히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기독교 박해시대가 끝나면 선한 목자는 가장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표현하는 상징이 되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래 선한 목자는 예수님이나 기독교적 인물을 의미하지 않았으며 성서적 배경에서 그렇게 묘사된 것도 아니었다. 보통 콘스탄틴 이전에 목자가 메고 있는 짐승은 뿔이 난 양이어서 누가복음(15:4∼17)이나 요한복음(10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어린양의 모습과 다르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선한 목자가 양떼를 인도한다. 그 경우 배경을 보면 음악의 신 오르퓨스(Orpheus)의 낙원을 표상하는 것 같다. 우유통과 악기 등의 출현이 그런 가능성을 더 확실하게 해 준다. 오르퓨스는 목가적인 배경에서 자주 나타나고, 수금을 타며, 여러 짐승들 특히 양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사회로부터 기독교 신앙의 주요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하여 오란테와 선한 목자의 표상을 빌려왔다. 오란테는 경건의 상징으로, 선한 목자는 박애주의의 상징으로 차용한 것이다. 콘스탄틴의 평화시대가 되면 선한 목자는 목가적인 소박한 옷을 벗고 황금빛 찬란한 옷을 입는다. 권위와 권세가 돌봄의 상징을 대신하고, 돌보아 주던 자가 돌봄을 받는 자로 변화되었다.
 어린양은 박해시대에는 선한 목자와 같이 등장하며, 간혹 양이 독립적으로 석관 위에 묘사되기도 한다. 박해시대가 지난 후에는 십자가의 예수님이나 사도들을 상징하지만, 콘스탄틴 이전 시대에 양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나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으로 사용된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박해시대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는 질병, 정치적 사회적 역경,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는 존재이며, 결코 현 상황의 위협에 굴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사회적 박해와 편견, 계층적 증오, 불법적 대우를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보다는 그리스도의 구원과 승리를 강조했다. 그러므로 박해시대의 양은 희생의 제물보다는 공동체의 종교적 지도자를 상징한다. 박해시대가 지난 후에야 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구속적 의미를 나타내게 되며,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상징은 사도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고대부터 종려나무는 승리나 생명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초기 기독교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목가적 장면에서 그려진 나무로서의 종려나무나 다른 나무는 오르퓨스로부터 유래되는 낙원의 만족스러운 현존을 상징하거나, 유대교의 예술과 문학에서 유래되는 생명을 상징한다. 링본(L. Ringborn)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묘사하는 나무를 창세기의 에덴동산 이야기로 소급시켜 해석한다. 그러나 그 나무들이 오르퓨스나 선한 목자와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목가적인 낙원과 연관되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빵은 항상 식사장면에서 나타나며 물고기와 포도주 컵과 함께 등장한다. 빵은 작고 둥근 모습을 하며, 보통 5∼7개의 바구니에 몇 개씩 담겨 있다. 기독교에서 빵은 애찬이나 죽은 자를 위한 식사를 뜻하기도 하지만,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방법이었다. 물고기와 빵과 포도주가 함께 나오는 식사가 종말론적인 애찬(고전 10:14∼22)인지 기독교화된 유월절 성찬(고전 11:17∼34)인지는 논쟁거리이지만,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희생보다는 생명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교제의 식사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당시의 빵 그림이 오병이어나 한 몸을 상징하는 떡(고전 10:17)으로 여길 수 없다. 오히려 물고기와 빵과 포도주는 기독교 이전의 로마 사회에서 축하하던 식사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로마의 여러 종교와 유대교, 신약성서의 영향을 통해 떡을 같이 뗌으로써 하나되는 성서적 의미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박해시대 이후에 빵은 십자가의 표시를 한 원통형으로 나타나며, 교제의 상위에 놓인다. 바구니 속에 넣은 빵도 비잔틴 시대 이후에 계속 나타난다.
 포도주는 물고기와 빵, 빵 바구니 등과 함께 묘사된다. 통상적으로 그런 그림은 죽은 자와 함께 식사하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도주는 개인 잔이나 큰 컵에 담겨 있지만, 병 안에 담겨 있기도 한다. 포도주에 물을 타기 위해서는 병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가끔 병에 비둘기가 앉아 물을 마시는 그림이 나오는데, 그 때 비둘기는 기독교 공동체의 평화를 상징한다. 포도나무는 생명의 근원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의 그림에서 포도나무는 단순히 장식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도와 포도송이가 비둘기와 같이 묘사되는 것은 감람나무처럼 평화의 의미로 해석된다. 포도는 보통 포도주를 연상하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의 포도는 애찬의 포도주를 의미한다. 처음에는 그리스도가 포도나무로 상징되었으나, 얼마 지나서는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포도로 상징되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깨어지는 커다란 포도로 묘사된다. 그러나 기독교 박해시대가 지나 평화시대가 되면 그리스도는 대속의 희생을 상징하는 십자가의 포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