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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기독교 세계관과 역사-역사를 변화시킨 크리스천

기독교 세계관 바탕으로 역사 주도

코메니우스, 이상재, 아이젠하워 등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를 변화시킨 많은 크리스천을 발견하게 된다. 신앙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헌을 한 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복 받은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다고 자처하는 인물들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성을 깨달아 보자.
 인류의 복지와 평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을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현재교육의 창시자 코메니우스다. 17세기에 이미 세계평화를 위한 새로운 교육사상을 정립해 인간교육의 새 지평을 연 코메니우스는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지상에서 실현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 특히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인간상을 가르치는 교육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간 이해를 통해 새로운 전인교육사상을 정립했다. 그의 평화교육사상은 후대의 교육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1957년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창설로 이어졌다.
 그룬트비는 덴마크를 오늘의 선진 낙농국가로 만들었다. 19세기 프러시아와의 전쟁에 패해 돌과 모래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스칸디나비아 땅만 남게 된다. 국가경제는 파탄에 이르렀고 국민들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알코올중독자만 늘어갔다. 그룬트비는 풍토에 맞는 새로운 낙농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국민의식 구조가 개혁돼야 잘 사는 나라가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민들 사이에선 의식이 변화되면서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룬트비가 내세운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3애 정신은 곧 국민들의 구호가 됐다. 이후 각 교회는 낙농기술을 가르치는 센터가 됐고 새로운 농업운동을 확산시켰다. 전세계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그룬트비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새마을 운동이 전개됐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해 미합중국을 유지하고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은 ‘피오리아 연설’에서 “노예제도는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산물이다.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링컨 대통령은 국가를 이끌어가면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기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전쟁 중에는 때때로 국가금식일을 정하고 국민과 함께 기도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를 이끄는 이는 하나님이며 자신은 그의 도구에 불과함을 잊지 않았다.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가호 아래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는 과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이 위대한 과제에 헌신해야 한다”며 국가의 안위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신앙관을 보이기도 했다.
 월남 이상재는 민족주의자였다. 38세 때에 기독교를 처음 접한 이상재는 1902년 개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1904년 석방된 그는 제일 먼저 언더우드 목사를 찾아가 “진정한 애국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기독교 신앙으로 정신무장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독립협회가 깨지고 정부도 친일파의 소굴이 된 때였기에 이상재는 나라의 운명을 구할 것은 기독교뿐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선교사들이 황성기독교청년회(YMCA)를 창설했고 이상재는 57세 나이에 YMCA 종교부 간사로 들어가 구국운동을 벌였다. 이상재를 비롯한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대거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조선 기독교의 지평을 넓힌 사건이었다.
 1944년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있기 며칠 전 아이젠하워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그는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 손에 모든 것을 맡겼으니 우리는 행동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노르망디 작전은 ‘사상최대의 작전’으로 D-데이 하루 동안 연합군은 병력 8만7000명, 각종차량 7000량, 보급물자 2500만 톤을 상륙시켰고, 6월 6일부터 7월말까지 그 수량은 156만 7000명, 33만 3000량, 160만 톤에 달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결국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세계 정상들과 만날 때에도 주일을 꼭 지켰다. 
 

 

기사입력 : 2004.10.22. pm 17:01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