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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기독교 세계관과 역사-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역사이해

이건창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

모든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다

역사의 본질, 하나님의 시각으로 봐야
정치논리 따라 이해 방향 바뀌면 안돼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인가? 아니면 역사는 우연의 산물인가? 역사안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과연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민과 나름대로의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여 왔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역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주권사상’에 기초하여 이뤄져 있다. 하나님 주권중심으로 본 역사의 이해는 결국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역사의 이해로 설명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역사의 이해를 위하여 하나님 주권사상과 역사의 시작과 끝을 설명한다.
 첫째, 기독교 세계관의 가장 중심된 사상은 하나님 주권사상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삶의 부분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같이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한다고 해서 그 사람은 로봇처럼 아무런 생각과 자기 생각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율적인 자기생각 그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더욱더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동행이 아름다워지고 복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세계관에 의하여 역사를 볼 때에 기억하여야 할 점은 역사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역사의 주체들은(즉, 국가, 민족, 개인 등) 자율적이고 스스로의 결정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말미암아 역사의 수레바퀴는 움직인다. 하나님 주권사상이 온전하게 선포되었을 때에 비로소 우리의 역사이해는 진리위에 기초하게 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역사의 주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다.
 둘째, 기독교 세계관으로 역사를 볼 때 모든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시각에서 보는 역사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역사의 시작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역사라는 시간의 시작), 그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만들어진 이후에(역사의 주체가 시작) 비로소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역사의 첫단추를 열었다. 더욱이 역사의 핵심주체인 인간을 만드신 이 또한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선언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 사랑으로 시작한 역사는 분명히 그 끝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역사의 끝은 아무도 예상 못하는 시간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것은 역사를 시작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직접 종결케 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끝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개입하심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관심이 되고 있는 과거사 규명도 이같이 기독교 세계관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과거사 규명이란 결국 역사의 이해를 다시 해보자는 것이다. 역사의 본질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봐야 제대로 보인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순종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일련의 행위가 모여서 역사의 줄기를 이룬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그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조역을 맡게 된다. 그러한 조역들중에서 일부는 역사의 흐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안하느냐가 결국은 역사의 줄기를 바꾸는 경우가 성경안에 많이 나타난다. 순종한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 아브라함, 다윗 이라면, 불순종한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 엘리 제사장, 압살롬, 빌라도 등을 들 수가 있다. 따라서, 과거사 규명 역시 누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였느냐 아니냐의 시각을 먼저 적용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따름이다. 역사는 정치논리에 따라 이해의 방향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역사, 그 자체는 사실의 연속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또 다시 역사의 이해를 바꾸려 한다면 그 역사는 또 다시 왜곡되어지고 말 것이다.
 

기사입력 : 2004.10.22. pm 16:59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