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절망 절대희망

임형근 목사(새신자국장)

 나는 미국에서 박사과정 종합고사를 준비하면서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다. 종합고사에 합격하지 못하면 석사논문을 쓰고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흘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누웠지만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를 하는데 문득 세상학문을 공부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진학 공부를 하던 때였다.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는 하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의지해 보리라고 생각하였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돌이 지난 아이를 가슴에 안고 15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런 정성이 어디서 났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박사과정 시험을 눈 앞에 두고 과거를 회상해 보니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너무나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만큼 예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니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서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렸다. 회개밖에 나오는 것이 없었다. 시간이 없고 준비할 것은 많았기 때문에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핑계삼아 기도하지 않고 가정예배를 등한시하였다. 회개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시험날이 되었다. 시험 기간 내내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좋지 못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준비한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시험을 마치고 난 다음에 나의 신앙을 정리해 보았다. 왜 진작, 평소에 하나님을 그렇게 의지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평소에 절대절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절망 가운데 찾아오셔서 희망을 주실까? 그것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에서이다.
 성경에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인물이 있다. 모세가 그렇다. 모세는 한때 애굽의 왕자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생각해서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모험을 한 결과 애굽의 왕자의 지위까지 잃어버려야 하는 위기를 체험한 인물이다. 광야에서 40년간 살면서 청운의 꿈은 사라지고 그의 절망의식과 인생에 대한 패배의식은 깊어만 갔다. 80세가 되자 이제 젊을 때의 모든 꿈과 희망은 사라졌다. 그때 하나님은 나타나셨다.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가서 내 백성을 구해내라고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거절했다. 자기는 그러한 위인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가라고 거듭 말씀하셨고 모세는 이전 저런 이유로 5번이나 거절하였다. 모세는 속으로 하나님께서 좀 더 일찍 자기를 사용해 주었으면 하는 섭섭한 마음을 거절로 표현한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정확한 때에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그 때에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희망의 빛은 인간의 절대절망 가운데 비추이신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좋은 순간들도 만나지만 가끔씩 절망을 느끼게 되는 때도 만난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러한 절망의 순간들은 실제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희망의 순간들이다. 우리의 절망의 골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영광의 봉우리가 더욱 높아지리라. 하나님이 높아지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과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시니, 사랑하는 우리로부터 무한한 존경과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 얼마나 즐거우시겠는가?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