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뜻

        김상길 목사(국민일보 종교국장)

 명문대학을 나온 다음, 잘 지내던 공직생활을 중도에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분이 있었다. 처음의 뜻과는 달리 물질적으로 가정적으로 힘들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경건한 사람은 주님을 만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주님은 그 사람에게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신다(시 32:6∼8).
 신앙인이 된 그가 다시 인생의 기회를 얻은 것은 출판업. 그런데 어렵게 시작한 사업에 심각한 위기를 만났다. 책을 쌓아둔 창고(창고라야 집을 개조한 것이었지만)가 여름 장마철에 침수된 것이다. 물에 잠긴 것은 책 뿐 아니었다. 몇줌 남지 않았던 그의 꿈도, 의지도, 행복도 물에 잠기고 말았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비참해 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신앙이었고 기도였다. 그는 기도했다. 그러자 책에서 물기가 마르듯, 그렇게 퉁퉁불어버린 불순한 의도들과 염려와 근심, 고난의 현실이 마르고 산뜻한 새날들이 시작됐다.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23)
 주님은 사람의 비천함을 통해 기념비적인 일을 행하신다. 비천한 일을 당할 때는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길 때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비천한 일을 당했지만, 결국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브니엘”을 경험했다.
 침수의 고난을 겪은 그는 얼마 있지 않아 서울 요지에 빌딩을 세웠다. 시공예배를 드리는 날 그는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뜻”을 새기고 또 새겼다.
 물에 젖어 찢겨나가는 책을 바라보는 비천한 신세에서 첨단의 출판위용을 자랑하는 빌딩의 당당한 주인이 된 그는 지금 겸손한 청지기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