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개척 일념에 무작정 인도네시아로 가다

 1976년에 설립된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의 각 선교회가 원주민 선교 지원체제로 대대적인 변신을 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는 소련선교회를 유러시아선교회로, 미주선교회를 서아세아선교회로, 유럽선교회를 동남아선교회로, 관광선교회를 인도지나선교회로, 북방선교회를 중국북방선교회로 재편하고 중국남방선교회와 남미선교회를 창립했다.
 1993년 1월, 유럽선교회원들은 갑자기 동남아선교를 명령받자 대책세우기에 나섰다. 김동욱 장로가 회장을, 유충진·임창빈·오청일·장일상 장로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각국의 부회장을 맡았다. 당시 집사였던 허철희 장로가 총무, 이건종 장로가 기획실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동남아선교회는 국민일보 종교부에 의뢰하여 동남아 선교현황 자료를 수집, 임원회의를 열었다. 임원회의에서 “일단 선교지에 가보자”는 의견을 모으고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는 2억2000여만 명의 국민가운데 1억7000만 명이 회교를 믿는 나라이다.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현지 신학교를 나온 뒤 준(準)선교사로 임명받은 사람이 한 두 명 있었을 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는 한치완 선교사 한 명뿐이었다. 1990년에 파송되어 1년 간 언어연수를 받은 한 선교사는 당시 자바섬 동쪽 작은 마을에 위치한 오순절 계통의 점벌신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동남아선교회원들은 일단 현지에 가서 한 선교사를 만나 원주민 선교를 논의하기로 하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연락이 잘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찾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김동욱 장로는 “애굽을 떠날 때 아무 준비없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떠난 모세의 심정으로 우리도 무조건 나선 겁니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그때는 다들 좀 미쳤던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1993년 3월, 32명이 무작정 선교지 개척 탐방에 나섰다. 비행기로 여섯시간 걸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한 뒤 점벌로 전화를 했다. 한치완 선교사의 부인 김애경 사모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왜 여기에 오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김애경 사모는 “그 시골까지 왜 오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김애경 사모가 수라바야까지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수라바야에 도착한 뒤, 자동차를 전세 내 다시 네시간을 달려 점벌에 도착했다.
 점벌은 버스가 간신히 다니는 오지였고 한국 사람이라곤 한치완 선교사 내외밖에 없었다. 일행은 호텔이라는 간판이 달린 곳에 여장을 풀었지만, 시설이 우리나라의 여인숙만도 못했다. 방안에 벌레가 슬슬 기어다녀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수저가 아닌 손으로 집어먹어야 하는 인도네시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도 하지 못했다.
 동남아선교회원들은 짐을 푼 뒤 바로 점벌신학교에 찾아가 학장에게 인사를 하고, 예배를 드렸다. 회원들은 예배시간에 파란 티셔츠를 똑같이 입고 앞에 나가 특송을 불렀다. 신학생들은 생전 본 적도 없는 한국사람들이 단체로 와서 성가를 부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다가 회원들이 2000달러를 신학교에 헌금하자, 신학교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상당히 큰 액수였기 때문이다.
 신학교에서는 식사를 못해 고생하는 동남아선교회원들에게 바나나 잎사귀에 싼 떡을 만들어 주었고, 회원들은 그제야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2박3일 동안 점벌 주변 지역을 탐방하고 한치완 선교사와 원주민 선교에 대한 논의를 한 뒤 회원들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남아선교회원들은 얼마 후 점벌신학교 관계자 7명을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초청했다. 인도네시아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조용기 목사는 이미 유명인사여서 서울에 한번 와보는 게 소원인 사람들이 많았다.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후 동남아선교회원들이 수시로 몇 명씩 조를 짜서 현지를 방문, 한치완 선교사와 교회 개척을 의논했다. 드디어 1994년 4월, 점벌에서 버스로 두시간 가량 떨어진 교육도시 말랑의 한 상가 건물 2층에서 말랑순복음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김애경 사모는 “개척을 계획은 했지만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동남아선교회원들이 기도로 밀어주니 힘이 났지요. 구역예배만 드리고 있다가 교회개척을 하고 본격적인 선교에 돌입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창립예배에 동남아선교회원 38명이 참석했다. 회장 김동욱 장로가 교회 건축을 위한 작정헌금을 하자고 제안했고, 회원들은 그 자리에서 4000여 만원을 헌금했다. 그 헌금을 기초로 시가 1억 원 짜리 땅 2000평을 계약할 수 있었다. 말랑순복음교회는 본교의 지원을 받아 3년 만에 나머지 돈을 완납하고 그 땅에 교회, 교육관, 유치원, 초등학교, 말랑베데스다국제신학교를 세웠다. 현재 중학교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1997년에 개교한 말랑베데스다국제신학교에서 현재까지 32명의 원주민 선교사가 배출됐는데, 그 가운데 14명은 지교회를 개척했다. 졸업생 가운데 몇 명은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건종 장로는 “원주민 선교사들의 선교지에 가면 숙연해질 때가 많아요. 길이 끊어진 곳에다 움막을 짓고,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선교하고 있지요”라고 말했다.
 현재 말랑순복음교회에 40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김애경 사모는 “우리가 선교하는 지역에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거의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어요. 본교에서 우리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기도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든든하지요. 선교회원들이 없어도 사역은 했겠지만, 그랬다면 너무 삭막하고 외로웠을 겁니다”라며 감사했다.
 말랑순복음교회는 원주민 선교의 모델케이스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랑순복음교회 1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한 김동욱 장로는 감개가 무량했다고 한다.
 “10년 전 무작정 찾아간 우리 회원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곳에 선교의 불이 지펴져 큰 역사가 일어난 것에 감동받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