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우나 ‘후덕’하지 못한 여인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집에서 도망나와 외삼촌 라반집으로 오게 되었다. 거기서 외사촌 누이동생들인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아 결혼생활을 한다. 그중 라헬은 언니 레아에 이어 라반의 둘째 딸로서 근친결혼과 일부다처가 허용되었던 고대 근동지방의 풍속을 따라 둘째 아내가 된 것이다. 라헬은 ‘암양’이라는 뜻이다. 라헬이 도망온 야곱을 처음 만난 것은 소녀시절 어느날 메소포타미아 하란 광야에서 아버지의 양떼를 먹이고 있을 때이다. 외삼촌 집에 머무르게 된 야곱은 라헬의 아리따움에 반해 사랑하게 되자, 아내로 맞이하는 대신 외삼촌 집에서 7년간을 봉사하기로 계약을 한다(창 29:20).
 라헬은 우아하고 현명했지만 족장의 아내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특히 시할머니인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처럼 불신앙적 수단을 자행한 것이다. 라헬은 아이를 못낳고 있는 자신에 비해 레아는 계속해 루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출산하자 시기하여 자신의 여종 빌하의 방에 남편을 들여보내어 아들을 낳도록 한 것이다(창 30:3). 빌하를 통해 얻은 아들이 단, 납달리이며 이들은 훗날 레아의 시녀 실바가 낳은 아들 갓, 아셀과 함께 북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라헬의 태에서 예정과 섭리의 아들이 태어났다(창 30:22∼24). 라헬이 꿈의 사람 요셉을 낳고, 또 막내아들 베냐민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적 생각의 잉태와 신앙적 잉태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으며, 하나님께선 신중하게 구원의 역사를 풀어 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헬은 야곱을 따라 친정집을 떠날 때 아버지의 우상 드라빔을 훔쳤다(창 31:19). 욕심많은 라헬이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몸에 숨겨 가지고 나온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서 간교한 모습을 보게 된다. 라헬은 ‘명랑’하고 ‘사교적’이었지만, 이기적이고 감정표현을 거침없이 할 만큼 대담한 여자였다. 그런 면에서 야곱이 라헬에게 매우 시달리고 다투기도 많이 하였다. 또한 남편을 독점하면서도 레아의 마음을 매우 속상하게 만든 여자였다. 어느날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어머니를 위해 합환채를 구해다 주었다. 합환채는 아기를 갖는데 도움이 되는 약초였다. 르우벤은 라헬이 아버지를 지나치게 독점하여 자신의 어머니가 독수공방을 하자 안타까운 마음으로 구해다준 것이다. 그것을 안 라헬이 그것을 좀 달라고 했다. 레아는 라헬에게 합환채(뇌물)를 주고 남편을 사기로 했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창 30:16). 얼마나 라헬이 야곱을 독점하고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라헬은 미모와 많은 자질을 갖추었지만 후덕하지 못했다. 외모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것이다.
 또 라헬은 혼합주의 신앙인이었다. 하나님과 동시에 우상을 섬기는 일은 두 주인을 섬기는 일이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훗날 라헬의 후손들이 망하고 북방민족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녀는 애곡하는 어머니의 표상이 되었다(렘 31:15∼16). 라헬은 가나안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여브랏 부근에서 베냐민을 낳고 난산 끝에 죽어서 그곳에 장사되었다(창 35: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