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순복음의 정체성을 심어줍니다
교회학교, 우리교회 시작보다 앞서 시작
적극적인 신앙자세, 균형이룬 삶 이끈다
순복음 교육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모셔들이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앞서 언급한 우리교회 교회학교 교육의 목표는 교회학교의 역사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대다수 교회들이 교회 설립 후나 혹은 설립과 동시에 교회학교를 개설하는 것과 달리 우리교회는 천막교회의 설립보다 한 발 앞서 시작됐다. 최자실 전도사는 성인들이 모두 일을 나간 후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아이들을 씻겨주고 품어 주었다. 아이들을 불러 노래도 가르쳐 주고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었는데 천막교회가 설립되기 이전에 벌써 60, 70명의 아이들이 모이는 규모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천막교회가 설립된 이후 주일학교는 더욱 급속도로 성장했다. 특히 교회가 설립될 당시는 특별한 문화적 정서적 오락 시설들이 부족했던 시기인 만큼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천막교회로 모여들곤 했다. 이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우리교회 교회학교는 규모가 커지자 주로 20대 후반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봉사자들이 구성돼 운영되기 시작했다.비록 좋은 시설을 구비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교회가 서대문으로 이전될 때까지 3년 반 동안 교회학교 학생 수는 350여 명, 교사는 20여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교회가 서대문으로 이전할 때 학생 대부분이 대조동 순복음교회에 남았기 때문에 서대문에서의 주일학교는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우리교회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주일학교 설립을 위해 초등학생과 미취학 어린이들을 위해 <순복음부흥회관 유년주일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교사와 어린이들을 재편, 모두 40,50명을 한반으로 조직했다. 걸음마 단계에 있던 당시의 주일학교는 조직관리나 행정면에서 미비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당시 교사들은 서울지역에서 교육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19개 교회를 선정해 매주 견학과 탐방을 하고 여러 자료를 수집해 주일학교의 각종 서식과 제도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교사들은 주일 저녁예배 후 조용기 전도사의 사무실에서 주일공과공부를 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하며 성령 충만한 믿음과 탁월한 열심을 보여주었다. 매주일 아침예배와 저녁예배 때는 물론이고 여름성경학교, 부흥회, 그 외에 특별한 절기나 행사 때에는 교사들이 조를 편성해 큰북을 둘러메고 교회 인근 을 돌며 어린이들을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해 예배를 드리곤 했다. 덕분에 서대문교회의 1, 2층은 어렵지 않게 가득 차곤 했다.
여의도로 교회가 옮긴 후 성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성인 성도의 증가와 비례해 교회학교 역시 부흥을 거듭하며 수용한계점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지하주차장과 계단 등에서 공과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교사들의 열심과 맞물려 교회학교 사역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팽창을 거듭했다. 하지만 사회여건의 변화는 교회학교의 슬림화를 극명하게 이끌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에서 시행한 출산정책으로 이는 교회학교 학생들의 감소로 이어졌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회문화의 부재는 학생들을 교회로 이끄는데 실패했다. 이는 한국교회 대부분이 경험한 현상이지만 우리교회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당면한 문제 앞에서 순복음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자세는 분명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교회학교는 학생들의 눈높이와 문화에 맞춘 교재를 개발하는 한편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교회학교 재건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상으로 교회학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폈다. 역사를 살핀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미래를 설계하는 것과 같다. 이제와 마찬가지로 우리교회 교회학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그리스도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녀들을 교육시켜 나갈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러하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