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화백 (추상화가, 여의도순복음교회)

한국현대미술 추상회화의 개척자
영적인 아름다움 화폭으로 전해
내년 성화만을 가지고 전시회 준비

 한국 현대미술계의 원로이자 추상화를 개척한 화가.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기독교적 영혼을 화폭을 통해 실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김 훈 화백을 만났다.
 여전히 ‘젊음’을 가지고 있는 김 훈 화백은 1924년 중국 무순(無順)에서 태어났다. “4대째 독실한 기독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예수님를 믿은거죠. 어려움 없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 건 큰 축복이라 생각해요”
 시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라 김 화백의 아버지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1941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고흐, 피카소와 같은 유명화가의 원화를 볼 수 있었어요.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한 눈에 좋은 그림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죠. 그리고는 마음이 들떠 잠을 못 이루었어요”
 해방이 되던 1945년 김 화백은 폭격을 피해 만주로 탈출했다. 그리고 이북을 경유해 삼촌이 있는 돈암동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경미술학교 동기인 문 신이 동화백화점(현 현대백화점)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되었다. 김 화백은 어찌나 반갑던지 그길로 달려가 문 신과 만나 기거를 같이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시회를 찾은 미국 공보원의 눈에 띄게 되었고, 미공보원 미술부분의 일을 하게 되었다.
 “공보원 직원이 제게 자기를 한번 그려보라고 했어요. 손놀림이 빠른 제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지 당장 나와서 일하라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제 길을 열어 주신거예요” 그렇게 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 화백은 마침내 1949년 공보관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가졌다. 개인전 이후에 지금은 시인이지만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구 상의 권유로 신문삽화를 그리게 되었다. “삽화는 매력이 있어요. 삶을 그릴 수 있었어요. ‘아리랑’, ‘신태양’ 등의 잡지삽화도 그렸죠” 생활이 어려워서 시작했던 삽화지만, 이것 때문에 김 화백은 김동리, 박인환과 같은 쟁쟁한 문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내려갔던 김 화백은 전쟁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 작품들은 1951년 미국 여류작가에 의해 하와이대학에서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해외전시회였죠. 하나님은 불우한 시절 그림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어요. 저는 전쟁 중이라 하와이에 가지는 못했지만요”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온 김 화백은 서울예고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제 관심은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 것이였죠. 시대적 상황의 변화가 제 그림에 변화를 주었어요. 제 작품이 추상적이지만 ‘생존’, ‘예감’ 등 기독교 영적인 삶의 이야기가 중심이 됐죠”
 1958년 미국에서 뉴욕의 월드하우스 갤러리의 위촉을 받아 ‘한국현대미술전’이 열리게 됐다. “당시 전시기획자인 프세이티 여사가 방한하여 작가와 작품을 선정했어요” 그때 김 화백과 장욱진, 전창섭, 김흥수, 김환기, 박수근 등의 화가들의 작품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이 전시회가 계기가 되어 김 화백은 도미(渡美)하게 되었다.
 “1960년대 미국은 미국적 현대미술을 부흥시키려 하고 있었어요. 그때의 활기찬 분위기가 저로 하여금 시작과 시도를 종용하게 했어요. 끊임없는 노력과 공부가 제 생활의 전부였죠”
 1967년 한국으로 돌아와 홍익대에서 강의를 하던 김 화백은 1989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 새롭게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저에게 첫 마음을 잃지 않게 하셨어요. 모든 작품을 기독교를 바탕으로 그렸죠. 하루는 아내가 철야예배를 다녀와선 레마를 받았다고, 갑자기 예수님을 그리라는 거예요.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화를 냈어요”
 김 화백은 부인의 말을 무시하고,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전부터 많은 그림들이 예약이 되던 전례상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김 화백은 그 전시회에서 그림이 단 한점도 매매되지 않자, 비로소 아내의 말을 무시한 것을 회개하게 됐다. “그때 아내가 하나님의 계획은 오차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무섭고, 떨리던지…” 결국 김 화백은 낮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성화를 그리게 되었다. 기존의 작품 때와는 달리 성화를 대하는 김 화백은 그저 조심스럽단다.
 “예수님을 그릴 땐 너무나 긴장돼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예술로 표현하는건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작업내내 기도를 간절하게 해요. 이제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성화를 그립니다. 성화는 제 기도죠. 성화를 그리고 나면 온 세계를 소유한 듯한 풍만한 마음이 생겨나요”  
 얘기를 듣고보니 인터뷰가 진행된 거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아마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인 듯 싶었다.
 김 화백은 2000년, 자신의 지난 모든 것을 정리하고 21세기를 소망하며 성화를 그렸다. 파리에서 그린 이 성화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기증됐고, 현재 교회 대성전 입구 왼쪽에 걸려있다.
 지금까지 김 화백의 성화 작품은 30여 점에 이른다. 내년에 성화를 가지고 전시회를 준비중이라 한다.
 프랑스 미술평론가 로제 부이요는 김 화백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말씀의 메아리다. 메아리는 프리즘의 일곱 색깔을 통해 표현되었고, 그리스도의 가시관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 인간들이 겪는 고통스런 운명을 묘사하고 있다”
 김 훈 화백은 작품을 통하여 영적인 아름다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전하고 있다.

   글/이소흔 기자 shlee@fgtv.or.kr
사진/김용두 기자 ydkim@fgt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