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모든 성악인들의 꿈의 무대인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에서 단신의 동양인 베이스 솔리스트가 등장, 탁월한 노래로 관중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인 성악가 연광철(39). 그는 ‘탄호히저’의 영주, 헤르만 역에 출연하여 열창했고 ‘독일 음악계의 황제라는 요아킴 카이저로부터 바그너가 찾던 바로 그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지금 세계 정상급 성악가로 그 까다롭다는 유럽 무대에 군계일학으로 우뚝 서 있다. 2000년 오스트리아 문예전문지 ‘뉴스’는 세계 성악인 50인을 선정했는데 베이스 부문 10인에 한국의 연광철을 뽑았다.
 세계무대에 보석 같은 존재 연광철. 그러나 소년 시절 그는 건축기능사의 꿈을 갖고 공고에 진학, 건축반에서 T자와 씨름을 하던 평범한 공고학생이었다. 충북 충주의 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공학도를 꿈꾸던 그가 어떻게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을까.
 바로 ‘뼈아픈 실패’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3 여름방학 때 남들이 다 붙는 건축기능사자격증 시험에 떨어졌다. 동급생 90%이상이 붙는 시험이었다. 비참한 일이었다. 절망하던 그는 2학년 때 ‘선구자’를 불러 교내 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연광철은 음악으로 진로를 바꾼다. 떨어졌기 때문에 바꾼 음악. 그는 청주대학 음악교육학과에 입학했고 졸업한 후 1992년에는 ‘미완의 보석’으로 베를린음대에 유학을 갔다.
 이때부터 미완의 보석이 가공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오래 걸리지 않아 유럽 무대에서 세계인의 눈에 띄었다.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것도 와일드 카드로 본선에 겨우 진출한 다음 얻은 영광이었다. 만일 그가 건축기능사 시험에 합격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의 연광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 주신 기회는 실패한 다음에 주어진다.
 애굽의 왕궁에서 살던 모세가 왕자로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살지 않았다면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