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늘 주님의 호령 나팔 소리에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의미에서 종말 신앙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註>
이창국 목사 (순신원 신약학 교수)
“새시대의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크리스천 부활 이후에는 세상의 종말
“그리스도안에서” 소망 갖고 승리해야
성경은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세상의 종말이 있다면 그 종말은 어떻게 임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서 신·구약성서의 메시지와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는 세상의 종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사건, 부활, 승천, 재림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새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고 있다(막 1:1). 그리스도는 이미 2000년 전에 오셨고(초림) 다시 오고 계시다(재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으로 대표되는 옛 시대는 종식되고 생명의 새시대가 이미 (already) 열려졌다. 주님의 재림시에 장차 완성될 구원의 현재적 실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은 사망으로 특징지어지는 옛 시대에서 생명의 새시대로 들어가는 종말론적 사건이 되었다(고후 5:17).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소유하게 되었다(엡 1:3).
그러나 새시대의 궁극적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진다(not yet).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된 구원은 그 완성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요 이후에 세상의 종말이 임할 것이다.
이러한 종말의 도식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우선 현 시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를 제공한다. 새시대의 궁극적 완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앙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옛 시대와 도래하고 있는 새시대가 공존하는 두 시대에 걸쳐서 살고 있다(고전 15:42∼50).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육과 영의 갈등은 성도들이 완성된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도상에 있음을 분명히 말하여 주고 있다.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은 지금 현재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미래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말적인 삶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된 우리가 미래에서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적인 삶이다.
미래에 이루어질 궁극적 완성으로 성도들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성령의 강력한 도우심으로 가능해진다. 약속된 성령의 오심은 종말의 성도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요 종말의 시대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종말이 시작되었음은 마지막때에 부어주리라고 약속된 성령이 신자에게 임하심으로 증거되었다(요엘 2:28∼32을 보라).
2000년 전 육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영역으로 돌아가셔서 성도들에게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주시는 분이 되셨다(고후 3:17).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하여야 한다(롬 6:4).
종말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승리를 바탕으로 주님의 재림에 이루어질 장차의 모습을 앙망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러한 삶에 필수적인 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다. 성령은 성도들에게 자유함과 기쁨과 평강과 안식을 줄뿐만 아니라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신다. 환난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성령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신다. 소망은 종말을 살아가는 현시대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의 존재 양상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소망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삶을 살 때 종말의 성도들은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요약하면,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진정한 처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장소이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안에서 성령과 항상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 이땅에서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동안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며 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삶이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삶이다.
이주희 기자
종말의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깨어 기도하고 성결한 삶 추구
주어진 일에 순응하며 인내해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 열처녀 이야기가 있다.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두운 밤이 되자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넉넉한 기름을 준비해 불을 밝혔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그만 기름이 부족해 등불을 꺼뜨리고 만다. 부족한 기름을 사러 간 사이 신랑이 도착해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혼인잔치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성경에서는 종말의 정확한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 때를 대비해 깨어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 역시 그런 맥락이다. 사도 바울은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며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롬 13:11)고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종말의 때 기독교인들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도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 살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12∼13절은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너희 마음을 거룩함에 흠이 없게 세우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셨다. 성도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주요한 요소는 바로 거룩과 사랑의 삶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거룩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어떤 환경과 처지 속에서도 참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고난과 핍박 중에도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의 공통된 소망이다. 히브리서 10장 36∼37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으며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도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세상을 살 동안 우리들은 할 일이 많다. 현실이 아무리 견디기 어렵고 힘들지라도 주님의 재림과 함께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극복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롬 8: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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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권사 (권사회 심방실장)
“확실한 천국소망 전하겠습니다”
최윤영 권사는 요즘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읽고 있다. 읽을수록 하나님이 주신 천국을 확실하게 실감한다는 최 권사.
“성경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감동이 전과는 사뭇 달라졌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의지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죠”
말씀과 기도 생활의 중요성, 더불어 전도의 필요성을 각인하게 된 최 권사는 가장 먼저 믿지 않는 사돈을 떠올렸다.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갈 수 있는 길은 두 갈래예요. 천국 아니면 지옥이죠. 저는 사돈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전도하고 싶어요”
최 권사는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않는 영혼들이 후에 그 지옥불에서 고통당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저는 천국이 확실히 있다는 것을 믿어요. 믿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꼭 전해줄 거예요”
강효상 안수집사 (마포대교구)
“생활 속에서 예수님 전할래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때를 위해 말씀으로 무장하겠다는 각오를 세운 강효상 집사. 마음과 생각, 행동의 일치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며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에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각오가 묻어난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쌓아가면서 술과 담배를 과감히 끊었어요. 이젠 술 담배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떳떳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이비 종교가 날뛰는 혼탁한 세상을 보며 예수님이 오실 그 날을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전도를 선택했다. 그의 전도법은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일명 ‘생활 속의 전도’. 가장 쉬울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늘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술 담배도 안하고 동료들과 세상적인 즐거움을 함께 나누지 않으니 가끔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하지요. 하지만 전 구역예배시간도 지키고 주일을 경건히 섬기는데 최선을 다할거에요. 제 모습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싶으니까요”
차숙이 집사 (금천대교구)
마지막 때 위해 전도 주력할 것
“예전엔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생겼어요. 천국확장을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전하겠습니다” 차숙이 집사는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읽고 막연하게 그려오던 천국에 대해 확실히 깨달았다. “그 날이 속히 오리라”는 말씀에 마음이 급해진 차숙이 집사는 우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찾았다.
그가 찾은 방안은 하늘나라 확장을 위한 전도였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한 동을 전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도에 주력하기로 작정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위해서 반장도 자청했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너 무엇을 하고 왔니? 물으실 때를 대비해 준비해야지요. 새벽예배, 금요철야 때마다 성령님께서 제 모든 것을 주관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오직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복음전파에 주력하겠다는 차숙이 집사. 그의 다짐 속엔 하나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