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늘 주님의 호령 나팔 소리에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의미에서 종말 신앙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註>
배현성 목사(한세대 대학원장)
종말 과연 그날은 오는가?
‘테러·괴질·지진’… 현실감 주는 말세 징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신앙 고백하라
1980년 말과 90년 초 ‘시한부종말론’의 출현으로 인한 한국교회의 영적 손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손실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종말신앙에 대한 무관심과 약화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성경에서 강조하는 ‘다가 올 미래의 사건’들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과거 명동거리나 서울역전에서 적지 않은 전도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강조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외치는 장면을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시한부종말론이 한국교회를 휘몰아친 이후 그러한 장면은 아릇한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교리를 통해 종말론이라는 정통 교리까지도 도매금으로 잊혀 버리게 만드는 사단의 전략과 계획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최근 토마스 주남 여사가 저술한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제목의 신앙서적이 교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잠자고 있는 종말신앙을 깨우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원래 종말신앙은 오순절신앙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세기 시작된 오순절주의의 핵심적 신학의 두 축은 종말론과 성령론 이었다. 따라서 오순절신앙이 전파되는 곳마다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는 강한 열망과 더불어 성령 충만을 통한 선교에의 헌신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순복음신앙 역시 오중복음의 마지막에서 제시되듯이 ‘재림의 복음’이 강조되고 있다. 종말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세세토록 왕노릇’(계 22:5)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관문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의 때와 관련하여 제자들에게 비유를 전하시며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마지막 종말의 때가 언제일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늘 깨어 있는 자세를 간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3)고 말씀하신 주님을 통해 말세의 징조가 주님 재림의 임박함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말세의 징조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지구촌 환경만 해도 성경에서 계시된 말세의 징조들이 오늘처럼 현실감있게 다가온 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앙인, 비신앙인 구분없이 모두들 이 시대를 가리켜 ‘말세지 말’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과 더불어 민족과 국가간의 대적(마 24:6∼7, 막 13:7∼8 눅 21:9∼10)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1차,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이어 한 민족간의 처절했던 6. 25 동란, 월남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틴과의 끊임없는 분쟁, 그리고 아프간, 이라크 전쟁과 계속되는 각종 테러 등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다음으로 지진과 기근현상이다(마 24:7, 막 13:8, 눅 21:11). 지진은 천재지변으로 인류역사 가운데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그 빈도와 강도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증가일로에 있다. 작년 중국 서부(2월 24일)와 터키 남동부(5월 1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모두 450여 명이, 알제리(5월 21일)에서는 3000여 명이 사망했다. 특히 성탄절 다음날인 26일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에서 발생한 강진은 4만여 인명을 삽시간에 앗아가기도 했다. 올 1월만 해도 대만 동부 해상지역(1일), 인도네시아 동부 발리지역(2일), 일본 와카야마현 부근(6일), 아프리카 북부 알제리 인근(10일) 등에서 지진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근으로 인해 지구촌에서 매일 4만명 이상이 죽어가는 데 이는 사흘에 한번씩 히로시마 원폭이 터져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어서 온역의 만연이다(눅 21:11). 작년 말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3개월 만에 8400명을 감염시키고 800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괴력을 보였다. 사스에 이어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조류독감은 치료법도 마땅치 않은 가운데 현재 8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또 다시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안전지대로 알려진 미국마저도 광우병 파동으로 고충을 겪고 있지 않은가? 어느 일간신문은 작년 한해 동안 발생한 이와 같은 지구촌 재난과 관련하여 “2003년은 전쟁, 테러, 괴질, 지진의 해”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다룰 정도였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존 스토트(John Stott)가 말했듯이 그러한 역사는 단순히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과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그 역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속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말사건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과 관련한 하나님 약속의 성취요 완성이다. 그러기에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대하는 자들에게는 전인구원의 궁극적 실체로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지옥이라는 피할 수 없는 세계가 형벌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종말은 과연 오는가?’라는 질문은 종말신앙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일종의 반문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에 대해 아무런 이의 없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는 신앙고백을 외쳐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완성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인생이든 그날은 있다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라
삶 꿰뚫는 역사의식 필요
누구의 인생이든 비 내리는 날이 있다. 실패, 좌절, 병고, 고난, 절망의 비를 만나면 실로 고통스럽지만 인생의 찬비를 맞을 때 비로소 연약한 나를 알고 이웃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으며 절대자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게 된다.
누구의 인생이든 쨍하고 해뜰 날이 있다. 동트는 새벽, 영혼에 햇빛이 비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 날에는 받은 바 축복을 형편이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아야 할 것이다.
또 누구의 인생이든 종말의 날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임종을 맞든 언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든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있을 종말의 사건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구원과 종말을 얘기할 때 언제든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앞의 징조들을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한 사건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종말로서 과거적 종말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 예수님의 재림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인류 역사의 심판으로 우주적 종말인 미래적 종말과 현재적 종말, 즉 오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말의 사인들을 보며 오늘을 종말처럼 사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삶을 점검해 본다면 종말의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종말의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 사함이 없이는 결코 평안함이 없다. 나만의 죄 사함에 그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웃과의 아름다운 관계 또한 중요하다. 이해와 용서, 사랑과 순종 그리고 감사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닮아 가는 삶이다. 끝으로 사명의 완수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명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해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일,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일, 교회를 부흥하게 하는 일, 민족과 세상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존 웨슬리 목사의 일화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한 젊은이가 나이 많아 늙은 웨슬리에게 물었다. “만약 내일 밤 12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다면 지금부터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하겠습니까?” 존 웨슬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네. 그리고 모레 아침엔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뵙겠지”
매일 매일을 부끄럼 없이 살아왔기에 죽음을 통보 받았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어떤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삶, 이것이 바로 종말을 향한 우리들 삶의 자세이어야 한다. 이렇게 매일을 살아갈 때에 언제 종말을 맞이하든 우리는 환희에 찬 미소로 외칠 수 있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박재형 기자 jhpark@fgtv.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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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집사 (여의도직할성전)
마지막 때까지 중보 사명 감당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소식에 뛸 뜻이 기뻤다는 이인숙 집사. “어머니가 천국을 소유하게 되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는 그녀는 요즘 들어 성결된 신앙인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언젠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럼 없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다.
“성경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은 나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세요. 저는 주님 오시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좋겠어요” 얼마 남지 않은 추수 때를 대비해 그는 최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
친구들에게는 전화로,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으세요?”란 질문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삶속에서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기를 바란다는 그는 마지막 때까지 중보기도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제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할 것을 명하셨죠. 그리고 믿지 않는 영혼들을 긍휼이 여기고 사랑하라고 밀씀하셨어요. 제게 주신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할 겁니다”
이래근 전도사(국민일보 사목실)
사역 감당과 국민일보 위해 기도
“종말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개인이 맞이할 죽음이든 인류의 종말의 때이든간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 하나님께 받아 누린 모든 것들을 이 땅에서 어떻게 다스리고, 사용했는지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래근 전도사는 재림의 때가 임할 때까지 주의 종으로서 사명을 철저히 감당하겠다고 다짐한다. 국민일보 사목실에서 사역하며 사원들에게 복음의 양식을 전하는 그는 교역자로서 먼저 말씀 묵상과 철저한 기도 생활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언인지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다.
“국민일보에서 사역하면서 국민일보가 감당할 일, 즉 복음전파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많은 분들을 보게 됐습니다. 복음을 접할 의지도 없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천국의 소망을 전하는 국민일보가 되게 해달라고 저는 언제나 기도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국민일보 임직원과 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오정선 기자 jsoh@fgt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