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국 목사(순복음 신학원 교수)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속에도 감사한 청교도 신앙 본받아야
영적 풍요로움 누리는 추수감사주일 기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영적 기갈에 시달리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어 버리고 살아가는데 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은혜를 값싼 은혜로 치부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삶의 연속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과 감사가 없으므로 영적으로 황무해지고 그 영혼은 결국 메말라 버리고 만다.
예수님의 비유중에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가 있다(마 18:23∼35). 주인으로부터 일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어떤 종이 자신에게 겨우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핍박하고 옥에 가둔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 비유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빚진자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용서를 받은 자들이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모르면 비유 속에 나오는 악한 종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악한 종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체험하여야 한다.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일 수록 더욱 깊은 감사를 드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면서 서신을 맺고 있다(살전 5:18하).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짧은 시간에 선교하여 개척한 교회였다. 사도행전 17장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사주에 의한 소동이 일어나 바울이 중간에 교회 개척을 하다 말고, 불가피하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는데도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의 가르침을 잘 받아서 복음을 꽃피운 교회였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는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부터 박해를 경험하였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핍박과 박해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는 성도들까지 있었다(살전 4:13). 그들은 박해를 받는 적대적인 상황과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의 도를 받아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일대의 교회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었다(살전 1:6∼7). 이러한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데살로니가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권면에서 그 비결을 찾아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목숨을 위협받는 박해와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기독교적 감사이다. 그 대표적 예가 종교의 박해를 피하여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혹독한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추위와 질병과 인디언의 습격으로 인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가 있었다면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청교도들의 감사의 원동력은 어떤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그들은 깊은 감사를 드렸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소망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밭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 거둔 첫 수확에 그들은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셨다”고 감사드렸다.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였기에 청교도들에게는 더욱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청교도들의 추수 감사를 통해서 우리는 감사하는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청교도들의 삶속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새롭게 되새겨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