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윤종남 목사)
‘자발적인 성도들의 헌신이 교회를 부흥시켰다’
1969년부터 청년회에서 활동할 때였다. 당시 조용기 목사님은 수요일 저녁과 주일 저녁까지 설교말씀을 전하셨다. 그때는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은 성도들로 그야말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청년들은 주로 2층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조용기 목사님 설교는 언제나 불 같았다. 설교중에도 성도들이 성령을 받아 기도를 드렸다. 그 때 성령충만 받은 청년·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지금은 선교사와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에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년 365일 중 360일은 기도회가 열렸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모두 성도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이후 교회의 기도운동은 금식운동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이어졌다.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은 그 때 당시 농기구를 쌓아두는 창고가 있던 허름한 곳이었다. 청년들은 그 곳에 모여 성령을 사모하며 뜨겁게 기도했다. 이후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전이 지어진 후 1974년 제1회 전국청년금식성회가 수천명이 모인 가운데 비 속에서 개최됐다. 성회를 마치고 은혜받은 성도들은 통일전망대에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도 했다. 청년성회를 시작으로 기도원에서는 여성성회 등 여러 성회가 생기면서 기도대성회의 붐이 일어났다. 당시 2∼3만 명이 금식성회에 참석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모일 때마다 기도를 통해 성령충만 받자 성도들은 성령의 뜨거움에 못이겨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이른 새벽은 물론 늦은 오후까지 북을 치고 찬양하며 노방전도에 힘을 쏟았다. 병원, 교도소, 경찰서 등 서울시내를 모두 휩쓸고 다닐 정도였다. 전도운동이 일면서 신유의 역사도 많이 일어났다.
기도운동이 전개되면서 교회는 남성구역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헌신된 일꾼을 뽑아 리더로 세웠다. 헌신된 여성 리더중에는 임신한 상태에서 큰 아이는 손을 잡고 작은 아이는 등에 업고 병든 구역식구를 데리고 버스를 2∼3번 갈아타면서까지 기도원을 찾아가 금식기도하며 이웃을 위해 부르짖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령의 붙드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교회 부흥을 갈망한다.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을 갈망하고 금식운동을 전개한다면 교회는 더 큰 부흥의 역사를 체험하리라 기대된다.
정리=오정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