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유독 텔레비전 속의 세계만은 호화판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방송3사에서 방영중인 미니시리즈 및 주말드라마들을 분석한 결과, 많은 경우에서 최상류층의 빗나간 소비행태를 화려한 화면으로 치장한 채 비판적인 시각 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들에서 이렇듯 소비지향적이고 향락적인 내용이 넘쳐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트렌디(trendy) 드라마의 유행과 관련지어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트렌디 드라마는 내용이나 구성 자체의 치밀함보다는 감각적 영상에 초점을 두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트렌디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다수는 재벌2세이고, 여자 주인공의 경우에는 뛰어난 미모와 친근한 성격을 지닌,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큼 고운 심성을 지닌 ‘신데렐라’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의 ‘사랑만들기’에 집착하다보니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보다는 맛있는 것 먹고, 멋진 곳에 가는 그런 장면들로 드라마가 채워질 수밖에 없다. 타고 다니는 차는 수억원대의 외제차가 기본이고, 사는 곳은 멋진 전망을 지닌 궁궐같은 곳이다. 결국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쓰기에 바쁜 소비 지향적인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사치-향락적인 인물의 등장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치-향락성 드라마가 시청자나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들은 무엇일까?
 첫 번째 문제점은 과소비에 대한 둔감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지나치게 잘 사는 사람과 그들의 과소비적 소비행태에 장기간 노출된 시청자는 ‘저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라면 저만큼 소비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과소비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는데, 이는 허위의식이라는 개념과도 연관되는 것으로서 실제보다도 훨씬 잘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문제점은 ‘모방할 수 있는 모델 발견’이라는 미디어 이용 동기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따르면 드라마를 많이 보는 시청자일수록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고 이러한 학습과정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되는 지를 배우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한 주인공들의 멋진(?) 소비행태를 목격한 시청자들은 자신의 형편보다 무리한 지출을 시도함으로써 ‘모방할 수 있는 모델’과 동일하게 되려는 욕구를 갖게되고, 또 실제로 실행에 옮기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위화감 혹은 상대적 박탈감 형성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바로 위에서 말한 ‘동일시’의 감정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과소비적 경향에 대해 반감을 갖게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꿈’이 깬 후 공허함을 느끼는 것과 자신의 현실과 드라마 주인공들의 화려한 모습을 비교하면서 그들에 대해 적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여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통한 시청자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드라마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이것을 신문 등 여론 매체를 통해 방송사측에 피드백함으로써 의식 있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을 제작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제작자들이 시청자를 무서워하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면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는 그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려내는 우리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을 때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쇼나 코미디와 같은 오락 프로그램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오락적 가치와 더불어 문화적 가치, 예술적 가치, 사회적 가치가 요구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시청률이라는 숫자 놀음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한 예술인으로서의 드라마 제작자의 의식 부재가 아쉬울 뿐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 wpark@k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