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향 (CBS ‘저녁스케치 939’ 진행자, CBS 교회)

편안한 방송진행 청취자 사랑 독차지
저녁시간, 정겨움, 올드팝의 삼박자
음반자료, 악기, 곡의 서두 모조리 외워

 6시 정각, 라디오 주파수대를 CBS 기독교방송(FM 93.9MHz)에 맞추면 경쾌한 휘파람 시그널과 함께 정겨운 진행자의 목소리가 포근하게 다가온다. 방송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퇴근길에 혹은 저녁을 짓는 부엌에서 청취자들은 하루의 노곤함을 위로받는다.
 지난 2000년 가을, 배미향 부장이 진행을 맡을 때부터 지금까지 상승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저녁스케치 939’. 그녀는 프로그램이 청취자들의 마음과 귀를 사로잡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해진 시간에 청취자들의 사연을 많이 들려주고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나 청취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하루의 피곤이 몰려오는 노을이 지는 저녁 시간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진행자의 편안한 목소리, 잔잔한 올드팝 이 삼박자가 조화롭게 맞아 떨어진게 인기비결이란다. 청취자들은 그 중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이끌어 가는 배미향 부장의 차분한 목소리를 으뜸으로 여긴다. 누군가는 향수를 자아내는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 ‘노스텔지어를 닮은 목소리’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녀가 ‘저녁스케치 939’의 진행을 맡은 건 2000년 9월 17일이었다. 기독교방송의 노조파업으로 비노조인 간부들이 방송진행을 맡아야 했던 때, 음악방송 진행 경험이 있던 그녀에게도 프로그램 하나가 배당됐다. 그게 바로 ‘저녁스케치 939’였다. 대타로 하는 진행이었지만 청취자들은 그녀만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9개월이 지나 파업이 철회되고 모든 진행자들이 방송으로 복귀될 때 이미 그녀에게 익숙해진 청취자들은 그녀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진행을 계속 맡아달라는 요구로 인터넷 게시판은 불이 났고 어떤 이는 그녀가 방송을 맡아야만 하는 당위성을 조목조목 적어 올리기도 했다.
 결국 임원회의를 거쳐 그녀는 고정 진행자로 프로그램을 맡게 됐고 방송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를 더해갔다. 지금은 유료화된 AOD(원하는 날짜의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주간 청취율에서도 언제나 그녀의 방송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매일 저녁 그녀는 정해진 대본 없이 생방송에 임한다. 인터넷, 모바일, 팩스를 통해 실시간 들어오는 수십 개의 사연과 곡을 방송현장에서 바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제작, 진행, 기술까지 혼자 도맡아 한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소화해내는 걸 보면 짧은 기간동안 터득한 노하우는 분명 아니었다.
 그녀는 1975년 기독교방송에 입사했다. 대구기독교방송에서 ‘꿈과 음악 사이에’ 란 심야방송을 진행하며 이름을 날렸던 그녀. 전화로 들어오는 신청곡을 빠르게 접수하기 위해 신청곡이 자료실 어느 위치에 꽂혀있고 어느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지, 어떤 악기로 연주되고 초입은 어떻게 시작하며 마지막은 어떻게 끝나는지를 모조리 외워 버렸다.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사연과 곡을 그 자리에서 선정하고 배열해도 어색함 하나없이 방송이 자연스러울수 있는 건 이런 연유에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으로 방송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녀가 처음 교회를 출석하게 된 건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기독교방송이 힘겨워 할 때였다. 방송국은 보도의 기능을 상실한 채 ‘전도와 음악’에만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히 방송국은 선교에 주력하면서 직원들이 영적으로 깨어지고 신앙적 분위기로 많이 흐르게 되었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를 출석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났고 세례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믿음없는 저를 기독교방송으로 이끌어 주신게 다 하나님의 계획이셨던 것 같아요. 언론통폐합으로 동료들이 방송국을 떠날 때에도 계속 남아 있게 하신 것이나, 힘겨웠던 때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신 것, 잠시 다른 업무를 하면서도 감사함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모두 현재의 저를 있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봐요”
 방송 진행자로서 그녀는 누구보다 매체가 갖는 위력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녀는 복음전파에 있어 교회가 ‘교과서’라면 방송은 ‘참고서’로 비유한다.
 “교회가 선교의 모든 일을 다할 수는 없잖아요. 방송이 교회를 도와 선교에 동참할 때 다양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녀는 ‘저녁스케치 939’를 통해 이 시대 지친 사람들을 보듬고 다독여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한다.
 “모든 일엔 ‘우연’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고 믿죠. 그 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도, 참 평안을 얻을 수도 없어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내는 사연들을 접할 때마다 내가 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듬어준다면 언젠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될 거라고 믿어요. 이런 마음으로 늘 방송에 임하고 있구요”
 매일 아침 CBS 라디오 프로그램 중 하나인 ‘조용기 목사의 오늘의 말씀’ 편집 일을 하면서 하루를 은혜로 시작한다는 그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수줍은 미소를 마지막으로 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