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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년대 우리교회 셀은…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역장 봉사 1년만에 배가 부흥


김태복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교회는 놀라운 속도로 부흥을 거듭했습니다. 서울시내는 물론 수도권 인근지역까지 교회로고가 박힌 가방을 든 지구역장들의 심방과 전도가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져 이들이 우리교회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 전체적으로 ‘70년대 부흥운동의 불길이 꺼졌다’고 하는 가운데 다시금 70, 80년대의 부흥열정을 회복하자는 분위기가 이곳저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도대체 ‘당시 지구역장들은 어떻게 했길래?’ 이런 궁금증을 갖고 78년부터 81년까지 지구역장으로 교회를 섬긴 김태복 목사를 만나 셀 활동에 대해 들었다.
 처음 김 목사가 셀구역장으로 봉사를 시작하며 선임자로부터 인계받은 구역식구는 단 두 가정. 요즘이야 맞벌이 부부가 많아 여성구역모임도 구역예배시간 잡기가 쉽지 않지만 당시 남성구역은 모든 일과가 끝난 후 모이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일과를 마친 후 모이니 ‘여유를 가지고 모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모임에 참석하는 성도는 많지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모임에 참석치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구역식구들을 보니 예배에 참석치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황금보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성도들을 보며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 작정하고 매일 새벽 3시 30분이면 일어나 구역식구들을 위해 기도했고, 월요일은 본지의 전신인 ‘순복음소식’지를 들고 전도대상자를 찾았다. 문을 열어주고 맞아주면 다행이지만 문전박대해도 포기하지 않고 대문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화요일은 ‘심방하는 날’로 정하고 셀원들을 찾았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추우나 더우나 그의 심방은 화요일이면 항상 정한 시간에 맞춰 진행돼 김 목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시계추와 같이 정확한 사람으로 말한다. 정한 시간에 셀식구들을 만나기 위해 다니던 회사에 ‘화요일과 목요일은 심방과 구역예배를 위해 6시에 퇴근하겠다’고 사장과 담판을 짓기도 했다. 구역원들에 대한 그의 이런 관심과 기도의 열매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구역식구들은 전도에 열심이었다. 그가 구역을 맡은 지 1년여만에 구역식구는 8명에서 12명으로 다시 40여명으로 불어나 더 이상 혼자 구역을 이끌 수 없을 정도였다.
 김 목사는 분명한 체험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 신앙인이다. 지금은 건장한 몸으로 목회하고 있지만, 76년 그는 원치 않는 질병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아 죽음을 목전에 두기도 했다. 바짝 마른 몸으로 베들레헴성전에 나와 간절히 부르짖던 그때 그 시간을 갖게 한 것이 ‘환자의 고통을 아는 목사가 되라’는 주님의 섭리였다고 믿는다.

 

기사입력 : 2003.09.21. pm 13:5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