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60대 나이 잊고 왕성한 작품활동 전개

김영기 장로(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장, 여의도순복음교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성경을 여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이 말은 아마도 창작을 필요로 하는 일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을 담고 있을 듯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보기 좋고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에 끌리는 것이 소비자로선 당연한 선택일 테니 말이다. 최근 출시한 모 화장품 용기를 두고 업계나 소비자들의 칭찬이 그렇다. 상품의 특성과 소비자들의 기호를 정확히 읽어낸 디자인이라는 평이다. 여성용품이니 만큼 여성이 만들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이 지긋한 노장의 작품이다. 이뿐 아니다. 이름만 대면 잘 아는 제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 우리 생활 가까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영기 장로, 71년부터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니 올해로 꼬박 32년을 채우고 있다. 60대의 나이에도 유행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여성 화장품 용기를 디자인하고 있으니 감각의 젊음은 강조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만하다. 아무리 젊디젊은 학생들과 함께 한다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의 이런 솜씨를 세월이 좀먹지 못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비결은 명쾌하고도 간단했다. “창조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작품활동에 창조는 없다”고. 알아듣기 힘든 이 말에 김 장로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역이지 사람의 영역이 아니란다. 이런 논리에서 그의 창작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숨겨진 것들을 하나씩 캐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했다. 때문에 작품기획에 앞서 그의 고민은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부연해 말하자면 풍부한 지식을 교수들이 갖고 있지만, 그 지식이 바르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의 생각이 이렇지는 않았다. 학생 때부터 큰 시험이든 작은 시험이든 떨어져 본 일이 없고, 작품을 대회에 출시하면 입상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 듯 그의 인생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얻게 된 것도 31세 때의 일이었으니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그의 삶에 하나님은 어디에도 자리할 수 없었다. 그때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일화 한 도막. 미션스쿨인 이화여자대학에서 교수채용을 앞두고 총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종교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당당하게 ‘종교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대답에는 ‘교수가 실력만 있으면 됐지, 종교가 무슨 상관이냐는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이후에도 그의 이런 태도는 한동안 유지됐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기독교대학에 재직하면서도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자랑하듯 말했다. 이런 그를 보고 같은 대학 교수들은 ‘다른 사람 다 교회 나가도 저 사람은 교회에 나갈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매주일 학교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고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도 미동하지 않던 그였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믿지는 않더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해 들어왔던 그였기에 그 절대자의 귀착은 하나님이었고, 78년부터 가족들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가 깨닫게 된 것이 듣는 자가 듣던지 그렇지 않던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콩나물 시루의 콩들이 물을 다 흘려 보내는 것 같지만 오래지 않아 키가 쑥 자라잖아요. 전하는 자의 사명이 이런 게 아니겠습니까. 당장은 물이 다 빠져나가 콩들이 자라지 않을 것 같지만 콩나물이 자라듯 일단 복음을 전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의 몫이니 우리의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겠죠”
 성경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했던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한 후 그의 삶은 바뀌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우선하게 되었다. 강의할 때에도 교수들과 친교를 나눌 때에도 복음은 빼놓을 수 없는 화두로 자리잡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복음전파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이 기도의 응답이었다. 1987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일이었다. 새벽 2시 30분쯤 신입생 가운데 하나가 몸이 펄펄 끓었다. 그날은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가 버스를 타고 수련원에 갔던 날이라 버스가 돌아간 후엔 별도의 교통수단이 없었다.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한 채 학생들이 교학과장인 그를 찾아왔다. 급히 다른 교직원들과 달려가 보니 학생은 말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크리스천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요청한 후 자리에 누워있는 학생을 붙들고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10여 분을 기도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학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동료교수 한 명이 인사동을 걷다 공사 중이던 건물에서 떨어진 쇠파이프에 맞아 쓰러진 일이 있었다. 의료진은 ‘사회생활의 재기가 힘들 것’이라고 진단, 주위를 망연자실케 했다. 사람의 방법으로 어찌할 수 없던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또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매일 심방하며 기도하자 흉터하나 남지 않고 동료교수가 나았다. 사람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일들은 이후에도 계속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했다. 일련의 이런 일들을 통해 학교에선 그에게 ‘수퍼맨’이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느냐’고 한다. “제가 한 일인가요.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면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만 보기 십상이니 때때로 곤란할 때가 있죠”
 복음전파에 대한 그의 열심은 지경을 넓혀 86년과 87년에는 극동방송에서 ‘5분 칼럼’을 직접 집필해가며 방송했다. ‘매주일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주변 이야기들을 신앙과 접목해 바른 가치관을 제시해 준다’는 평을 받았던 그의 방송선교는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91년부터는 동료교수들과 ‘기도모임’을 발족해 이 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매주일 이 모임에 참여해 말씀을 전하며 이화여자대학과 국내 각 대학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할 때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설 때 종교가 없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는데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불러 사용해주시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덧붙여 그는 “인간은 항상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과 용기가 불완전한 인간에게 생명력과 가능성, 기쁨을 불어넣어 주는 원천인데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 더 열심히 전해야겠지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글/박재형 기자 jhpark@fgtv.or.kr
사진/김용두 기자 ydkim@fgt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