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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허스톤 목사가 본 ~(14)

C.G.I.를 통한 전 세계 교회성장

1976년 C.G.I 출범 국내외 세미나 개최

조용기 목사를 통해
성령으로 치유되는 역사 급증


 맥도날드 맥가브란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교회성장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선교 지도자이자 신학교 교수였다.
 1976년 초 그가 조용기 목사를 찾아왔을 때 교회는 3만5천명에 가까운 교세에 1천6백개 이상의 셀로 성장해 있었다. 맥가브란 박사는 세계에서 조직이 가장 잘 정비된 교회라며 조용기 목사에게 기구를 만들어 폭발적인 교회성장을 직접 보려고 찾아오는 많은 목회자들을 격려하고 가르치지 않겠냐고 하였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조용기 목사는 맥가브란 박사의 제의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을 느꼈다. 1975년 베트남 선교사역의 붕괴로 인한 충격에서 회복 중이던 우리를 만난 자리에서 조 목사는 서울로 돌아가 자신과 함께 교회를 방문하는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시작하자고 하였다. 나는 즉각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음 단계로 인도하고 계심을 알았다.
 1976년 11월 아내 맥신과 딸 캐런과 나는 서울로 돌아와 국제교회성장연구원(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출범하였다. 목회자와 교회 리더들을 대상으로 서울과 해외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회장에는 조 목사가 그리고 나는 실행위원으로 일하였다.
 C.G.I.에서 우리는 3가지 유형의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하나는 서울에서 개최한 것으로 교회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목회자와 리더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둘째는 서울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외국에서 연 것이었으며, 셋째는 사역 초창기 우리 교회내 리더십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1977년 6월에 우리가 첫 국제 목회자 세미나를 주관했을 때 느꼈던 흥분과 전율을 잊을 수 없다. 2백명이 넘는 미국 목회자들과 약 1백20명의 태국 목회자들을 포함한 총 6백명의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1978년이 되자 C.G.I.는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6천명의 목회 지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국내외에서 19번의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우리는 세계 도처의 지도급 목회자들, 대부분 성도 1천명 이상의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C.G.I. 자문회를 발족시켰다. 조 목사와 나는 다양한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종종 자문회 위원을 초빙하여 함께 사역을 하였다.
 1978년 1월 말 우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첫 해외 세미나를 가졌다. 자카르타가 국가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천93명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조 목사가 구원과 치유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며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는 가운데 저녁 기적의 집회에는 5천명까지 참석하였다.
 1978년 어느 월요일 조 목사와 나는 사우나에 함께 갔다. 우리는 교회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 가운데 버스를 타고 오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데리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 혁신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였다. 조 목사의 방향 설정대로 캐런과 나는 아동구역 설립을 계획하였다. 이 구역은 나중에 교회에서 가장 전도를 잘하는 구역이 되었다. 구역에 속한 아동 70%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전도되어 나온 것이었다. 주일학교는 또한 계속 커져 가는 서울의 여러 지역에 지역분교 성전을 열기 시작하였다.
 4월 말 우리는 유럽에서 낮 세미나와 저녁 부흥회 형식의 C.G.I. 대회를 독일, 스웨덴,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의 6개 도시에서 열었다. 스톡홀름 세미나에서는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를 포함한 23개국에서 1천2백명의 목사가 참석하였다. 독일 칼스루에서는 4천명이 저녁 기적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 대회기간 수명의 사람들이 암에서 고침을 받았다.                                              

<계속>

 

기사입력 : 2003.08.23. am 10:30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