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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문화 - 문화, 정복할 것인가 정복당할 것인가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대중 문화, 무조건 배척보다는 변혁이 필요


반기독교적 실체 파악이 오늘날 교회의  사명
그리스도인의 문화회복, 영성회복으로 가능

      

 뉴욕 타임즈 기자가 맥도날드 햄버거 창시자 레이 크록(Ray A. Kroc)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기자는 그에게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나는 맥도날드를 종교처럼 신앙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가족을 믿고 그리고 맥도날드를 믿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그 순서가 뒤바뀌어집니다” 나는 이 대답이 오늘날 세속화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세상 문화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파도에 정복당하는가 아니면 이 파도를 극복하고 이겨나가는가 하는 문제는 교회의 생존이나 선교적 사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글에서 문화의 의미와 세속 문화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논하면서 세속 문화에 대한 대응방안을 살펴보려고 한다.

 ◆ 근대 문화와 기독교 신앙 

 문화라는 말은 ‘경작하다’, ‘개간하다’란 뜻의 라틴어 ‘콜로레(colore)’에서 온 말이다. 이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자연을 어떤 형태로 변형시키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영향력이 가해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반면, 문화는 인간의 특정한 사상, 감정, 가치관이 개입된 육체적, 정신적 활동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는 문화적 활동을 볼 수 있다. 문화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의사소통적 기능이다.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은 반드시 문화적 형태를 거쳐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문화의 매개적 역할에 대하여 로버트 슈라이트는 문화를 ‘의미체계’로 이해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화란 ‘하나의 거대한 의사소통의 그물망으로서 그 속에서 상호영향력을 행사하며 언어적, 비언어적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양상에 따라 교회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통해 현대 사회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근대성이 초래한 근대문화였다. 서구에서 근대성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것은 신 중심적인 사고와 생활 방식보다는 합리적인 이성을 우위에 둠으로써 인간의 진보와 편리를 추구하는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문화가 기독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교회 문화의 세속화이다.
 세속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가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작동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과 교회의 의사결정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아니라 세상적 가치에 따라 이루어진다. 세속화는 ‘사회적 삶의 영역들이 기독교 복음의 영향에서 이탈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소금이 그 맛을 잃어가는 과정이다(마 5:13). 이러한 세속화가 기독교 신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첫째는, 기독교 신앙의 상대화이다. 세속화된 근대 사회에서 신앙은 심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중요할 뿐이다. 기독교적 진리는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회와 별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둘째는, 기독교 신앙의 사유화이다. 서구의 개인주의 영향을 받으면서 기독교 신앙은 단지 개인적으로 벽장 안에 갇혀버린 신앙이 되었다. 얼마 전 미국 성공회에서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 신부가 주교로 선출된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의 성공회 교회들이 이 사건 때문에 크게 동요되었다. 이것은 더 이상 동성애 문제가 교회 문화와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진 로빈슨 신부는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에 대해 그것은 단지 자신의 개인적 취향일 뿐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직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개인적 취향으로서의 기독교 신앙은 근대문화가 교회를 공격하는 주요한 무기이다.
 셋째는, 기독교 신앙의 주변화이다. 세속화된 근대 사회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권위를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전에 당연히 여기던 교회의 전통은 약화되고 부식되어간다.
 넷째는, 기독교 신앙의 다원화이다. 근대사회는 일관성을 보여 주지 못하기 때문에 혼합주의를 증가시키고 이러한 혼합주의는 뉴 에이지 운동과 같은 유사종교 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신앙의 명목화 현상이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에 대한 근대 문화의 영향을 ‘철장’, ‘거대한 쇠망치’, ‘영혼의 산성비’라고 하였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교인과 비교인, 신자와 불신자가 구분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목상의 기독교인(nominal
Christian) 문제가 심각해진다. 즉 이름뿐인 기독교인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에 있다. 명목상의 기독교인은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공신력과 신뢰도를 하락시킴으로써 교회를 약하게 하고 쇠퇴하게 만든다.

 ◆ 대중 문화의 의미와 그 영향력

 근대 문화가 발전시킨 중요한 현상이 바로 세계화이다. 세계화란 1980년대 후반 이후, 전 세계가 급속도로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융, 교통 그리고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세계는 문화적으로 점점 하나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대중 문화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 3’ 같은 영화는 미국 뿐 아니라 일본, 한국에서도 거의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세계화는 또한 서로 이질적인 문화의 차이점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근대 문화적 상황에서 문화의 개념은 과거와는 다르게 인식되었다. 즉 이전에는 문화가 주로 인간 정신을 갈고 닦음으로써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신활동에 초점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이 하는 모든 일상적 활동이 문화 개념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화란의 철학자 반 퍼슨은 “문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하였다. 즉 문화는 우리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여가를 보내고, 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중 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대중 문화는 문화 생산과 소비가 일부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일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의미를 담는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문화란 단지 여가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오락거리(entertainment) 이다. 오늘날 대중음악, 전파매체, 영화, 언론, 향락매체 등은 대중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대중문화에 반기독교적 시각이나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고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대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중음악이 사람들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지난 1970년 6월 21일자 덴버 포스트(Denver Post)지는 콩에 대한 실험 결과를 보도한 적이 있었다. 연구진은 콩을 4그룹으로 나누어 3주 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키웠다. 한 그룹의 콩에는 마약을 주입했는데 3주 이후 11.5인치 자랐고 뿌리는 작고 약했다. 팝 음악이 나오는 방에서 자란 콩들은 같은 시기 동안 15인치 자랐으며 뿌리는 중간 정도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방에 있었던 콩은 18인치로 줄기가 곧게 자랐다. 마지막으로 조용하고 경건한 음악을 들려주는 방에서 자란 콩은 같은 기간 동안 20인치로 가장 크게 자랐으며 콩들은 스피커 쪽을 향했다. 그리고 뿌리나 줄기도 매우 튼실하게 잘 자랐다.
 이것은 음악이 콩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것이다. 콩도 이러할진대 만약 사람이 저속한 가사가 담기거나 폭력적인 가사의 음악을 듣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반기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팝 음악은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홍수같이 몰려오는 반기독교적 대중문화의 실체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문화에 대한 사단의 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 대중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문화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문화, 대중 문화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러한 문화를 변혁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문화 자체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와 문화와의 관계에 있어서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는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문화 안의 그리스도,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와 역설관계에 있는 그리스도, 그리고 문화의 변혁자이신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 이것은 세상의 문화가 죄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통하여 문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변혁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교회는 근대의 대중문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첫째,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문화를 실현해야 한다. 문화의 문제가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라면 일상적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부터 노동과 여가, 결혼과 성 그리고 재정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근대 대중 문화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가 주인이 되려는 욕망과 오만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문화를 변혁시켜 나갈 수가 없다. 교회는 제자도를 가르치되,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의 삶 가운데의 제자도를 강조해야 한다.
 둘째, 문화 선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문화가 삶의 문제라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영성과 실력을 갖춘 평신도 선교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특히 대중 매체를 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음악, 영화, 언론 등에서 기독교적 마인드로 무장된 기독교 지도자들을 키워야 한다. 또 놀이 문화나 출판 문화 등에서도 선교적 사명을 가진 전문가들이 나와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기독교적 문화 생산자의 역할에 해당하는 것이다.
 셋째는, 문화 소비자 운동이다. 오늘날 대중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문화 상품은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음란물에 대해 교회는 그 해악에 대해 알려주며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말씀의 적용을 통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중 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수용할 수 있게 성도들을 인도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 소비자 운동은 한 개인만의 힘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건강한 문화 시민 운동이 함께 발전되어야 한다.

 ◆ 영성의 회복을 향하여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세상의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유혹을 당하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감소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교회가 대중문화 앞에서 패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한다.
 기독교회가 20세기의 근대 문화적 상황에서 중요한 국가적인 부흥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세속 문화가 교회에 얼마나 큰 도전이 되는지 시사해준다. 사단은 세상의 문화라는 도구를 통해서 교회를 강력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강력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상적 삶의 영성이 중요하다. 교회가 세속 문화의 파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일상적인 삶 가운데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또 원시적인 영성도 중요하다. 원시적 영성은 뜨거운 기도와 전도 그리고 말씀에 대한 순종을 회복하는 것이다. 또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역할은 다를지라도 문화 선교사로 부름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소명을 이루는 사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홍영기 목사 (교회성장연구소장)

 

기사입력 : 2003.08.23. am 10:2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