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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창립 45주년 특집 - 존 허스톤 목사가 본 ~

여의도를 축복의 땅으로…


계속되는 부흥 속에 여의도로 이전
조용기 목사를 강력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어느 추운 가을 날 있었던 심방이다. 조용기 목사와 나는 교회에 출석하는 한 가난한 가족의 판잣 집을 찾아 산꼭대기 근처까지 걸어갔다. 우리는 방 한 칸 집 더러운 쪽마루에 걸터앉아 기도하고 그들을 심방하였다. 바로 그때 멀리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심방이 끝난 후, 우리는 울음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살펴보았다. 조 목사와 나는 쌀쌀한 바람을 가르며 지붕이 없는 아주 작은 판자 구조물을 발견하였다. 그곳에는 울어대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몸을 움츠리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어머니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조 목사와 나는 조용히 들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남편은 한국 전쟁 때 그녀와 세 아이를 남겨둔 채 사망했다. 그녀는 나이가 30세에 불과 하였는데 중노동과 배고픔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녀는 마치 노인같아 보였고 아파서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었다. 조 목사는 몸을 웅크려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온기를 찾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옆에 있어주었다.
 그 모습은 나의 영혼을 감동시켰다. 하나님은 조 목사를 비전과 지혜로 사용하실 뿐 아니라 깊은 연민을 통해서도 사용하고 계셨다. 조 목사와 나는 교회로 돌아와 사람들을 보내 그 산에 사는 미망인을 돌보게 하였다. 그 미망인은 너무나 감동된 나머지 교회에 나와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드렸다. 몸이 완쾌된 후, 그녀는 거리행상을 하며 세 자녀를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다른 목사들이 무엇 때문에 조 목사를 하나님께서 강력히 사용하시는지 찾아와 묻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조 목사를 도와 교회성장을 위한 해결책을 찾게끔 하셨을 뿐 아니라 셀 그룹이 다른 교회에서도 일어나도록 하셨다.
 1970년, 우리가 베트남에 있는 교단 소속 선교단을 이끌기 위해 한국을 떠날 때까지 교회는 2백여 개의 셀과 8천명의 등록성도로 성장하였다. 교회는 여의도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심방과 계속해서 늘어나는 셀을 돌보기 위해 목회자가 3명 더 늘었다.
 그 후 5년 간 베트남에서 선교단을 이끌고 있을 때, 조 목사는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주었다. 그는 김남수 선교사와 그의 가족을 파송하여 당시 국제 선교팀에 합류시켰다. 1973년 말, 조 목사의 교회는 훨씬 더 큰 여의도의 성전으로 20명의 목회 스텝과 1만2천5백56명의 성도와 함께 이전을 하였다. 그리고 1974년 말이 되자 5백42개의 셀과 1만6천3백9명의 성도로 더 성장하였다.
 베트남에서 아내와 내가 보낸 시간은 큰 기쁨과 큰 슬픔이 함께 채워진 시간이었다. 우리는 여러 선교사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었는데, 이들은 성경학교와 교회개척을 하였으며 마약재활 프로그램도 운영하였다. 하지만 19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되자, 우리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압박감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나는 심장마비에 걸리고 말았다. 베트남에 이제 어린 교회를 막 탄생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린 교회를 아무런 도움이 없이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회복실에 있었을 때, 조용기 목사는 나를 보기 위해 그 먼 곳까지 찾아주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모두 나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하였다. 조용기 목사, 그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강력하게 사용하시는 사람이었다.
<계속>
 

기사입력 : 2003.08.16. am 10:51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