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며 아내와 함께 힘겹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뭐가 힘겨울까? 이는 서로 다른 시청 습관 때문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보는 나와 달리 아내는 수시로 채널을 바꿔가며 여러 방송을 본다.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내는 그렇게 보는 게 가능하단다. 당연히 아내와의 텔레비전 보기가 내겐 고역인 동시에 인내심의 한계를 확인케 한다. 그럼에도 이를 참고 볼 수 있는 것은 ‘신혼의 약효’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어찌되었든 이날도 아내는 한 손엔 먹을 것을 그리고 나머지 손엔 리모컨을 감아쥔 채 텔레비전 속 여기저기를 휩쓸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프로그램에서 멈췄고, 그 뒤로 채널은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무엇이 이런 기적을 만들었을까? 아내의 시선을 사로잡은 방송의 내용은 이렇다.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에 사는 엄일섭(41) 이현숙(29)씨 부부, 남편 엄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자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과 발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밥 한술 뜰 수 없는 처지지만, 그는 지금 장애를 갖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찬양 팀에서 코로 건반을 연주하며 섬기고 있다.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어떻게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항상 도움만 받았는데 뭔가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 ‘10년 전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고 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며 코로 건반을 두드리며 연습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지난 세월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몸의 타격보다 훨씬 커 보였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지가 뭘 한다고….’ 이런 식의 말은 그의 몸에서 기운을 ‘쏙쏙’ 빼내갔다. 그럼에도 세상을 향한 그의 눈은 애정으로 가득하다. 방송 끝 부분 기자가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를 묻자 그는 “세상이 아름다운 건 자신이 어려워도 항상 남을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항상 거칠고 살벌한 뉴스들이 넘쳐나는 신문과 방송을 접하다 그를 만나니 이기와 위선으로 말라버린 세상에서 사랑 헌신 희생 등을 생각케 된다. 괴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