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교회부흥
쉴새없이 기도하는 조용기 목사
여성 셀 그룹, 남성으로 확대...
두 사람이 결혼한 후 1965년 봄, 나는 조용기 목사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편지에는 온통 교회성장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이제 주일에 두 번의 예배로는 몰려오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습니다. 5월 첫 주부터는 3부예배를 새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대구에서 매우 놀라운 부흥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집회장소로 들어가려는 바람에 경찰이 통제를 위해 파견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현재 함께 살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기쁜 마음으로 저희 새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매일 아침 영광의 보좌 앞에서 선교사님과 선교사님 가족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드립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성령님께서 쉴새없이 기도하는 조 목사에게 보상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혼한 지 일년이 지나서, 조 목사와 사모 사이에 첫 아들이 태어났다. 성령님께서 교회에서 역사하시는 동안에 조 목사는 이따금 자신의 진정한 부르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있었다. 1966년 2월 조 목사로부터 주일 낮 예배에 5천명이 출석한다는 편지를 받고 감사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분명 목사와 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제 아들이 이제는 상당히 컸습니다. 제게 웃음도 짓고 말도 붙여옵니다. 아내가 선교사님께 안부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돌아오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우리가 함께 하지 않았지만,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종 조 목사와 셀 리더들을 통해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우리는 매일 매일 조 목사와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였고, 성령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보며 기뻐하였다.
1967년 우리가 안식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 조 목사는 서울에서 라디오 사역을 위해 후원금을 마련해주는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다. 그는 편지를 통해 교회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4층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4층은 교회학교와 청년부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교회 도서관 개관과 함께 문학 프로그램도 시작하였습니다. 교회 월보(monthly church m-agazine)도 발행하였습니다. 현재 이곳의 사역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선교사님의 협력의 손길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며 흘리던 눈물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놀라운 수확을 거두는 큰 기쁨에 차있습니다. 빨리 오셔서 이 승리와 놀라운 추수에 우리와 함께 하십시오! 오직 선교사님과 우리만이 이 날을 보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알뿐입니다”
나의 친구인 조 목사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해, 셀 그룹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1967년에 우리는 1백26개의 홈 셀과 함께 7천7백50명의 성도를 섬기게 되었다. 성장은 그 후에 더 빨리 진행되었다. 1968년이 되자 홈 셀은 1백45개로 늘었다. 여성 그룹의 놀라운 성장에 자극을 받는 가운데 교회의 남성도를 염려하던 이철익 성도가 첫 남성 셀 모임을 안창식이란 성도의 집, 넓은 거실에서 갖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5명만이 참석하였지만 나중 20-30명이 모였다. 곧 교회 전체 남성도들이 홈셀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예전의 사역 패턴으로 돌아왔다. 조 목사는 주일 오전 3차례 구원과 치유를 중심으로한 예배를 인도하였고, 나는 저녁 2차례 성령을 중심으로 한 예배를 인도하였다.
월요일은 가족의 날이었다. 교회에서 일하는 분들도 집에서 쉬었다. 월요일에는 한두 시간 조 목사와 함께 사우나를 하러 간 적이 많았다. 실내에 수도가 있기 전 피로를 풀기 위해 발전했다는 한국의 전통방식이었다. 뜨거운 증기가 우리 주위에 가득하면,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함께 웃었다. 월요일날 다음 주일 설교의 대지를 설정하는 조 목사의 관습 때문에 우리는 종종 설교 요점과 인용하려는 성경구절에 대해 자주 토론을 하였다.
예전처럼 주 중에는 신학교 학생 중 핵심 멤버들을 이끌고 다른 도시나 농촌지역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한 후, 새로 새워진 교회를 위해 한두명을 남겨두고 왔다. 서울에 있을 때 조 목사와 나는 화요일과 수요일 사무실에서 지냈으며, 나는 상담을 하고 수요 저녁예배를 준비하였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가정이나 사업장에 가서 기도심방을 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