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틀을 잡아가는 소그룹들
조용기 목사가 소그룹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발표하자, 남성도들 중 일부는 이에 반발했다. 조 목사의 사무실에는 능률적으로 일하는 몇몇 여성 리더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조 목사를 격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우리들은 설교하는 법을 몰라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가르쳐주시면, 모임에 가서 목사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게요. 가정 모임을 갖는데 목사님의 도움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저녁예배 전, 조 목사는 자원하는 여성리더들을 만나 등사한 공과지를 나누어주며 가르쳤다. 거기에는 다음 주에 나누어야할 내용의 개요도 적혀있었다. 여성리더들은 조 목사가 나누어준 자료를 가지고 모임에 가서 전달하였다. 조 목사는 또한 가정 모임이 어떻게 운영되어야하는지에 대해 일반적인 지침을 알려주었다.
아주 잠시동안은 모든 것이 잘되어 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곧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그룹 모임은 매주 다른 가정으로 돌아가며 진행되었는데, 그만 다과를 차리는데 있어서 서로 먼저 가정보다 더 잘, 더 많이 차리려는 경쟁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너무 긴 예배시간으로 인해 아내들이 집안 일을 등한시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계만 바라보는 남편들을 짜증나게 하였다. 그리고 어떤 그룹에서는 지역이 너무 큰 나머지 리더들이 심방하기 위해 장시간 버스를 타야만 한다는 불평을 하기 시작하였다.
일부 리더들은 신앙적 교리가 맞지 않는 외부 강사를 계속해서 초빙하였으며, 어떤 그룹에서는 회원 간에 돈을 서로 빌리고, 또 그 돈을 잘못된 곳에 투자하는 일이 생겼다. 한 리더는 그룹 리더들이 주마다 드리는 헌금을 훔치기도 하였다. 일부 그룹은 50명까지 성장하여 한 명의 리더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 이상으로 성장하였다. 나이가 든 리더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쳤고, 결국 떨어져 나갔다.
조 목사는 분명한 지침을 갖고 대응해나갔다. 다과는 비싸지 않은 것으로 간단히 마련하며, 순서가 정해진 1시간 모임이 끝날 때 대접하는 것으로 하였다. 사전 승인 없이는 외부 강사를 세울 수 없게 하였으며, 돈을 빌리거나 모임의 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을 금하게 하였다. 헌금은 리더와 회계가 함께 계수한 후 회계가 교회로 가져오도록 하였다.
조 목사는 젊고 강건한 여성리더들을 선발하였다. 그룹의 인원이 15명이 되면 부리더를 임명한 뒤 새 그룹을 세우게 하였는데, 이때 기존 멤버들의 반까지 새 그룹에 가세할 수 있었다. 모임이 끝나면 리더는 서면 보고서를 교회에 제출하였다.
미래에 이 그룹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강력하게 사용하실 줄은 우리 중 아무도 몰랐다.
5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사용하시는 조 목사와의 만남
1964년부터 셀그룹 활동은 아주 잘 진행되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2년 이상의 휴가를 떠나는 동안 헨리 스웨인과 리디아 스웨인 선교사 부부로 하여금 조 목사를 돕도록 하였다. 조 목사는 자신과 교회에서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자주 편지를 써 알려주었다.
1964년 겨울, 조 목사는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매주 20∼30명의 가족이 새로오고 있습니다. 조만간 결혼할 예정입니다. 하객이 2∼3천명 정도 올 것 같은데,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나면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갈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성혜와 저는 선교사님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답장과 함께 나는 하나님께서 조 목사를 강력하게 사용하시는 것을 멀리서 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몹시 기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조 목사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에 관심이 있었을 뿐 아니라 조 목사 개인의 행복에도 관심을 갖고 계셨다. 교회가 일정하게 계속 성장하듯, 하나님께서는 조 목사의 삶도 확장시키고 계셨다. 조 목사의 약혼녀 성혜는 아주 아름다운 젊은 숙녀였다. 그녀는 재주가 빼어난 음악가였으며, 조 목사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될 자매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