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신도 사역자 중심의 홈그룹 기초 세우다
성경에서 초대교회 모델로 교회 조직 연구
나는 조용기 목사가 회복되는 동안 자주 면회를 갔다. 예배에 몇 번 참석한 것 외에 조 목사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상에서 기도와 안식과 말씀을 읽으며 보냈다.
그는 더 이상 교회의 모든 짐을 혼자서 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최자실 전도사와 나, 우리 둘조차도 함께 지고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형편이었다. 놀랍게도 교회 운영은 효과적으로 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성장하려면 이런 식으로는 자신 혼자로서도 또 최자실 전도사와 나로서도 육체적인 한계로 인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조 목사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사도행전을 읽고 있을 때, 조 목사는 초대교회의 성장과 사역 패턴을 주시하게 되었다. 오순절날 3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고, 사도행전 4장에서는 그 수가 5천명을 더했으며, 5장에서는 수많은 무리가 그리스도께 나왔다. 그리고 성령께서 매일 매일 그 수를 더하셨다.
함께 모일 수 있는 큰 장소가 한 곳도 없었던 그때의 믿는 자들은 회당이나 성전으로 나갔다. 그리고 믿는 무리들을 이끄는 리더는 단 19명뿐이었다. 12명의 사도와 7명의 집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조 목사는 초대 예루살렘의 교회가 어떻게 그 많은 무리들을 돌보았는지 궁금해 했다. 자신은 늘어나는 3천명의 회중도 충분히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 목사는 자신이 그 부분을 여러 번 읽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집에서 모여 함께 떡을 떼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함께 나눈 것을 보았다고 했다(행 2:42∼47). 그 수많은 성도들은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각 가정에서 모이되, 그들은 가정을 방문했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 예배도 드렸다. 그리고 훗날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눔바와 빌레몬과 그의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롬 16:3∼5, 고전 16:19, 골 4:15, 몬 1∼2).
대조동 천막에서 모인 교회 개척시절에도 우리 성도들은 지역을 4곳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각 지역의 연락체계를 정해 이따금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하지만 사도행전에 나타난 것이 훨씬 더 나아 보였다.
조 목사는 또한 구약도 읽고 있었는데, 이드로와 모세의 이야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출 18:5∼27). 그는 자신이 모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꼈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세심히 읽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집사들을 가정 예배의 리더로 세우고, 주중에는 서울 전역의 가정에서 모이는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주일과 수요일에는 조 목사가 계속해서 설교를 하였고,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여 갔다. 너무나 놀랍고 성경적인 계획이었다. 최자실 전도사와 나는 조 목사에게 이 계획를 추진하도록 격려하였다. 우리는 지친 우리의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기력을 회복한 조 목사는 집사들과 남성 리더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열었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평신도 리더들을 임명하여 가정 모임을 갖도록 하신 것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한 집사는 “일을 마치고 나면 너무 피곤하여 모임을 이끌 수 없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은 “몇몇 그룹은 분명 교만해져서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교회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세 번째 평신도 리더는 “이 계획이 성경적으로는 보이나, 자신들이 이에 대한 훈련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교회 활동은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 게다가 그는 “이 때문에 사례비를 드리는 것이 아니냐”고 조 목사에게 반문하기도 하였다. 회의 결과 리더들은 ‘멀리 가서 오랫동안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였다.
조 목사는 깊이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홈 그룹을 시작하려던 그의 첫 시도가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전통과 틀에 사로잡힌 사고는 그의 남성 리더들을 바꾸기에 너무 강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