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허스톤 목사가 본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8)
막중한 책임감·과도한 일정으로 쓰러진 조용기 목사
조 목사 회복 위해 최자실 전도사와 협동 목회 시작
1963년 여름, 더운 주일날 조 목사는 꽉 찬 성전에서 2번의 아침예배를 인도했다. 항상 설교를 잘하는 그였지만, 그날따라 몹시 피곤해 보였다.
오후에 그는 3백 명의 새신자에게 물세례를 줄 예정이었다. 조 목사는 자신이 담임 목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염려가 되어 사역을 돕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조 목사는 단호했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직 튼튼합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조 목사는 3백 번이나 사람들을 물 속에 넣었다 끌어올렸다 하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조 목사는 저녁 예배에 자신이 통역 할 미국 부흥사를 영접하러 공항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조 목사는 담임목사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하였지만, 그가 과중한 짐을 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에게 다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내가 공항에 대신 나가서 부흥사를 만나고 호텔로 모셔다 드릴테니, 조 목사님은 식사도 하고 좀 쉬세요”
조 목사는 다시 거부했다. “아니요. 그 부흥사는 제가 나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 목사는 공항으로 가서 부흥사를 모시고 호텔에 여장을 풀게 한 뒤 곧바로 저녁 집회 장소로 이동했다. 결국 조 목사는 식사할 기회조차 없었다.
저녁 집회가 시작되자, 나는 강단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협력 선교사로서 대개 주일 저녁예배에 설교를 했고, 초청 강사가 왔을 땐 함께 자리를 하여 사역을 도왔다.아내와 딸이 평소에 앉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며,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있었다. 설교시간이 되자 조 목사는 천천히 강단으로 걸어가 초청 강사 옆으로 섰는데 약간 흔들리는 듯 보였다. 당시 조 목사는 최고의 통역을 하고 있었다. 몇 분 동안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듯 싶었다. 조 목사는 지쳐 있었지만 불같이 설교하는 강사와 똑같은 몸짓을 하면서 통역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조 목사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마루로 쓰러졌다. 그의 마른 몸이 마루 위에서 맥이 빠진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조 목사에게 달려갔다. 그는 희미한 소리로 나를 불렀다.
“존, 나 죽습니다”
집사들이 재빨리 조목사를 근처 병원으로 호송했다. 나는 놀란 부흥사에게 다른 통역을 붙여주고 놀란 회중에게 설교하게 하고는 아내와 함께 바로 뒤따라 갔다.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은 현재 내 기억에서는 희미하지만, 녹색과 하얀색의 응급실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는 생생히 생각난다. 조 목사는 침상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병원에서는 조 목사의 심장이 1분에 2백회 이상 뛰고 있으며, 호흡도 간신히 하고 있다고 했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가 들어와 검사를 위해 큰 주사기로 피를 뽑아갔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머리를 숙인 채 우리의 젊은 목사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마침내 의사가 움직임이 없는 조 목사를 진찰하기 위해 왔다. 의사는 몇 분 동안 검사를 하더니 보더니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이분은 육체적으로 완전히 탈진하였습니다. 건강이 손상되었고 심장이 약해져 있습니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침대에 누워 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저의 소견으로는 이분은 다른 직업을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설교나 목회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시 긴장하게 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 위기 상황은 우리들에게 빠른 결단을 필요로 했다. 최자실 전도사와 나는 일시적으로 목회사역을 나누었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휴식을 취해야만 하는 조 목사를 위해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