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기 목사 신유기도 많은 병자 치유 받아
얼마 후, 조 전도사는 집사를 임명하였다. 더 이상 청중을 모으기 위한 부흥강사 초청 부흥회는 없었다. 대신 우리는 성도를 가르치고 동기를 부여하여 남들을 섬기고 전도하도록 하였다.
나는 조 전도사가 곧 담임사역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은사를 모든 것에 우선하게 하였다. 조 전도사의 설교는 솔직담백하였고 기름부으심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게 하는 은사를 주셨다. 때문에 우리는 수년간 지속하였던 새로운 사역의 패턴을 시작하였다. 주일 아침에는 조 전도사가 구원과 신유에 대해 설교를 하였고, 저녁에는 내가 성령세례에 대해 설교를 하였다.
조 전도사가 주일 아침 설교할 때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서, 병자들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는, 일어선 자리에서 기도를 해주는 방법을 처음 시작하였다. 조 전도사는 병자를 위한 집단기도를 하였고,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특별한 치유의 모습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가 병 나은 것을 각각 말할 때면, 그 병들었던 자가 일어나 손을 흔들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우리는 곧 주중 프로그램도 개발하였다. 주일은 설교를 하였고, 월요일은 휴식을 위한 가족의 날이었으며, 화요일과 수요일은 교회 사무실에서 상담을 하였다. 조 전도사는 수요저녁 설교를 준비하였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나와 조 전도사가 함께 심방을 하였다.
1962년 매주일 약 1천 2백여 명의 성도가 출석하였고, 그해 4월에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에서 조 전도사에게 목사안수를 하였다. 나는 담임사역자 직분을 내려놓고 내가 이름을 붙인 ‘고문선교사(missionary advisior)’가 되었다. 나는 정규 스텝직을 원하지 않았다. 나의 직무는 조 목사를 예우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나의 새로운 역할은 더 젊은 사역자들을 독려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주중에는 신학교 학생 중 핵심멤버들을 데리고 다른 도시에 가서 부흥회를 가졌으며, 그곳에 새로 개척된 교회를 돌보기 위해 한 두명의 학생을 두고 왔다. 주중 다른 날은 새로 개척된 교회나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한 모임에 참여했으며, 때로는 가정이나 갓 개척된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1962년 5월 13일 우리는 교회명칭을 ‘순복음중앙교회’로 바꾸었으며, 이것은 교회의 위치를 부각시켰고 우리 사역의 철학의 변화를 조명하였다. 한편, 점점 증가하던 청중들은 곧 활기찬 회중이 되었다.
성경말씀은 언제나 틀림이 없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나는 조용기 목사를 존중해 주었고, 그 또한 나를 성심껏 예우해 주었다. 조 목사는 우리 가족을 늘 염두에 두었는데, 내가 지방으로 설교하러 갈 때면 최 전도사와 함께 늘 맥신과 캐런이 잘 있나 찾아주었다.
한번은 딸아이인 캐런이 깊은 슬픔에 빠져있었을 때 집을 방문하였다. 딸에게는 해피라는 아주 쾌활한 금빛 코커 스파니엘 강아지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눈에 흐릿한 막이 생기며 시력을 잃기 시작하였다. 한 겨울 날이 추워지자 우리는 해피를 따뜻한 우리의 작은 이동식 주택에 데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해피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을 거의 보지 못하는 해피가 머리를 가구에 부딪칠 때마다 캐런은 마음이 깨어지는 듯 아파하였다.
조 목사의 반응은 즉각적인 것이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더니 그의 손을 해피의 눈에 대고 시력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다음날 해피의 눈을 보니 하얀 막이 사라지고 없었다. 해피는 아무런 시각장애를 느끼지 않으며 그날부터 캐런과 함께 다시 놀기 시작하였다. 딸아이는 성장하던 그 교회의 다른 아이들처럼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하나님은 정말로 고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매일 매일 삶에 있어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담당하시는 분이시다’
조 목사는 다른 여러 면에서도 우리를 격려하였다. 우리가 라이베리아를 떠나기 얼마 전 아내는 임신 4개월에 사내아이를 유산하였다. 우리는 그 아이를 구두상자에 넣어 아프리카에서 살던 집 뒷마당에 묻었다. 비록 우리에게 캐런이 있었지만, 그 슬픔은 결코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한국에 갔을 때, 아내의 유산에 대해 말해준 사람은 조 목사뿐이었다.
하루는 조 목사가 찾아와 흥분하며 한 여성도가 교회에서 본 것을 말해주었다. “어제 저녁 꿈에 천국에 갔었는데요, 조목사님. 너무 너무 아름다웠어요. 한데, 그곳에 자신이 존 허스톤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어린 소년을 보았어요. 도대체 이것이 무슨 꿈이죠?”
그 성도가 말한 소년의 나이는 죽은 아이와 일치하는 나이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상실을 위로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젠가 아들을 다시 볼 것이다. 한때 내가 격려했던 사람이 이제는 나를 격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훨씬 더 위대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