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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통역자 조용기 목사와의 만남(3)

열심과 함께 질문이 많았던 청년

 기도와 질문의 사람, 조용기

 내가 조용기 목사를 처음 만난 것은 여름이었다. 깡마른 젊은 신학생으로 마지막 학년을 다니고 있었다. 자신과 조국이 직면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옷을 정갈하게 입었으며, 유쾌하고 친절한 성품에 하나님의 일에 대해 몹시 이야기하고 싶어하였다.
 버드는 네 번의 집회 가운데 조용기 학생에게 나의 통역을 맡게 하였다. 그중 세 번은 전도 전략도시들의 교회에서 열렸다. 조용기 학생은 영어를 아주 열심히 공부하였고, 통역도 항상 잘해내었다. 이전에 10여 명의 통역자들과 같이 사역을 해보았고, 그 중에는 신학생들도 있었는데, 조용기 학생 같은 통역자는 없었다.
 6개 도시에서 가졌던 1주일 기간의 전도대회 중 우리는 아침 집회에서는 성령충만을, 저녁집회에서는 구원과 신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매일 4번의 집회로 쉴새없이 바빴지만, 조용기 통역자와 나는 집회 사이마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한 두 가정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조용기 통역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홉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님은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아낸 상태였다. 그는 일찍이 영어를 배웠고, 전쟁중에 법률과 의학을 조금씩 배웠지만, 어떤 학위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 루 리처드란 선교사가 그의 신학교 입학을 주선하였다. 조용기 학생은 아주 열심히 공부하였고, 눈에 보이는 기독교 서적은 모두 읽었다.
 나는 지금까지 조용기 목사만큼 하나님에 대해 굶주려있던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나는 부모로부터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그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때는 그와 최자실 목사가 대조동에서 사역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다. 조용기 목사는 참된 신앙인이었다.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항상 열정적이었다. 내가 함께 사역했던 그 어떤 통역자보다도 그와 함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하였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내었다.

 신유에 대한 질문

 무엇보다 대부분의 신학생이 갖는 질문은 신유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오순절과 은사주의 출신의 선교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신학교에 출강 온 초빙강사들은 말씀에 대한 지식은 많았지만, 반면 성령에 대해서는 상당히 약했다. 그들은 마지막 열두 사도의 죽음과 함께 기적의 시대도 끝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신유와 기적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때문에 조용기 학생은 자신이 폐결핵에서 고침을 받았음에도, 그의 병고침을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예외적인 것으로까지 여겼었다.
 그후, 그는 오럴 로버츠 목사의 신유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가 질문한 많은 것 중 하나는 ‘신유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정말로 믿느냐?’는 것이었다.
 조용기 학생이 신유에 대한 질문을 하였을 때, 나는 하나님께 우리의 관계를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신유에 대한 성경구절을 그에게 보여주며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는, 과거 10년 동안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것을 말해주었다. 1956년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은 첫 구원과 신유 집회를 위해 나에게 자금까지 지원하였다. 3개월 동안 나와 버드는 라이베리아의 주요 해변과 내륙 도시에서 구원과 신유 집회를 가졌었다. 우리는 4만명이 넘는 병자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현지 일반언론사는 90%이상이 고침을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나는 조용기 학생에게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일깨워주며, 내가 한국과 라이베리아에서 본 특별한 치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나는 신유야말로 오늘도 하나님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조용기 전도사의 새로운 약진

 우리는 조용기 전도사의 고향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부산의 한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가졌다. 하루는 저녁집회가 끝나자 조용기 전도사가 내가 다가와 웃는 것이었다. 우리 집회에 참석한 한 목회자가 귀신을 내어쫓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마귀씨, 제발 이 사람에게 나와주세요”
 우리는 그 목회자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해야 된다고 조 전도사의 통역을 통해 말해주었다. 크리스천들은 귀신에게 나가달라고 애걸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귀신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조 전도사와 나는 그 귀신들린 자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이번에는 마귀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즉시 고침을 받았고 마귀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함께 있던 목회자는 자신이 배운 것에 크게 기뻐했다.
 마침내 조 전도사에게 새로운 약진의 때가 다가왔다. 수년 동안 양쪽 귀가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 위해 내가 기도해 주었을 때였다. 내 옆에 있었던 조 전도사는 그 남자가 들린다고 하자 확인해보고 싶어했다. 그는 한국말로 양쪽 귀에 속삭이고는 따라해 보라고 하였다. 그가 그대로 따라하자, 흥분하고 놀란 조 전도사는 크게 외쳤다. “들을 수 있대요! 들을 수 있답니다!”
그 집회 일정이 끝나기 전에, 조 전도사는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들은 병고침을 받고, 구원을 얻고, 성령충만함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기뻐하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안되어, 버드는 피곤한지 그만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벅찬 나머지 잠을 잘 수없었다.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구름위로 떠오르자, 나는 미래에 펼쳐질 두가지 일을 알게 되었다. 라이베리아에서 놀라운 사역을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국의 선교사로 부르고 계셨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와 함께 일하도록 우리를 예정하고 계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언제나 대단한 일이었다.

<계속>

 

기사입력 : 2003.05.24. am 09:15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