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자<한국리더십센터 전문위원>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살 차이인데, 두 분 모두 재작년 초와 작년 말에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건강하게 사셨고, 당신들 앞서 보낸 자식 하나도 없었으니, 그만 하면 복된 삶이었다. 우리 7남매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분들을 보내 드렸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우리 형제들은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얘기할 때면 어김없이 두 분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회한 등을 토로하며 울먹이곤 한다. 남들이 하던 얘기들이 모두가 사실이었다. 특히, 치매와 중풍이 같이 닥치는 바람에 마지막 몇 개월을 노인병원에서 홀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머니가 가끔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 더더욱 미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부모는 열 자식 거느리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 못 거느린다”고 하시던 너무나 분명한 핑계와 그럴 듯한 이유들. 정말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정들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를 노인병원에 모셨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돌보는 데 있어서 그런 이유나 핑계들을 어디 내세우던가 말이다.
 지난 주, 교회에서 사람들의 가슴에 꽂힌 빨간 카네이션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삭여야 했다. 그리고 어버이 주일이면 반드시 부르는 찬송가 304장을, 이전에는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나 보고 싶고 안타까워서 속울음을 삼키며 불렀다.
 믿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천국에 가셨는데 왜 슬퍼하느냐고. 그곳은 고통도 아픔도 없고, 영원한 이별도 없는데, 곧 가서 만나면 되지 뭘 그리 그리워하느냐고. 그런데 내 부모를 떠나 보내기 전에도 나는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참 싫었다.
 그들은 정말 혈육의 죽음을 통한 이별을 경험해 봤을까. 자기에게 그런 일이 닥쳐도 그런 맘으로 보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굳건한 믿음일 수 있을까. 내가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은 그분들이 지옥에 갔을까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새삼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최소한 부모에 대해 생각할 때만은 누가 뭐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더라는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장 12절)
 5월에 어린이날이 먼저 있고, 이어서 어버이날이 있는 걸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어른이 먼저라는 사실을.
 혹 아이들을 밥먹이고, 옷 입히고, 학교 보내는 것을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없는지, 그들에게서 효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혹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