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다시 살린 기도의 동역자
조용기 목사의 초기 목회사역에 함께 동행했던 존 허스톤 목사. 이제 81세의 노구이지만 우리교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본지에서는 존 허스톤 목사가 본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에 대해 연재한다. <편집자 註>
1998년 8월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40주년 개회식 연사로 나를 초청하였다. 조 목사와 사모 김성혜 총장에게는 장성한 세 아들과 한창 자라는 손자 손녀들이 있었다. 교회 교적인 75만이 넘었고,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현상이 되어버린 순복음교회를 배우기 위해 목회자들이 몰려왔다.
나의 오랜 친구를 다시 보는 것은 몹시 흥분된 일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오직 위대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정중한 예의를 갖춘 사람이다. 그는 선교사로서 초창기 시절 자신과 함께 사역을 하였던 나를 예우하고자 마지막 시간에 나의 통역을 자처하였다. 그 수많은 성도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나는 조용기 목사에 대해 대단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조용기 목사와 함께 나란히 서는 순간, 나는 그 기쁨이 모두에게 나타나며 우리의 삶을 함께 엮어 놓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러나, 그것이 조용기 목사를 보게 된 마지막은 아니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3년 뒤에는 심장수술을 받게 되었다. 2001년 9월 20일 저녁 우리 가족은 간호사로부터 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해 6월 심장수술을 받은 후, 나는 지속적인 합병증으로 고생하였고 병원을 수차례나 출입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약해지자 의사는 혼자서는 호흡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한 인공호흡장치를 달아주었다.
성경과 경험을 통해 우리가 치료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내 맥신과 딸 캐런은 주님께 결사적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캐런은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 나머지 서울에 있는 조용기 목사의 사무실에 연락을 하여 내 장례식 예배를 인도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조용기 목사는 책상에서 나를 위한 기도도 장례식 설교 준비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기 목사는 한국에서 7천마일 이상 날아와 9월 29일 플로리다에 도착하였다. 조용기 목사가 내가 있던 중환자실에 들어왔을 때,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조 목사는 나에게 장례식 설교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부활을 기도하러 왔다고 하였다.
나의 오랜 친구를 만나니 인생의 그 어떤 때보다 기뻤다. 조 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온전한 부활과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조목사가 기도해주고 간 후, 나의 병세는 급격히 호전되었고, 얼마 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현재 나는 건강하며, 얼마 있지 않아 81살이 된다. 하나님은 한때 내가 용기를 주었던 그 사람을 사용하셔서 다시 나에게 생명을 선포하게 하셨다. 또한 그를 사용하셔서 이 내용을 적도록 하셨다. 다음날 아침, 조용기 목사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캐런에게 내가 반드시 나의 일생에 대한 책을 써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
이제부터 쓸 내용은 곧 발간될 영어판에서 발췌한 것이다. 교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여러분은 조용기 목사를 개인적으로는 결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들이 조용기 목사를 만나길 늘 바란다. 나는 조용기 목사를 그가 23살의 신학생 때 처음 만났는데, 그를 알고 그와 함께 일한 것은 내게 놀라운 특권이었다.
나는 앞으로 조용기 목사에게 언제나 깊은 감사를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수십 수만명의 사람들을 고치고 가르치고 용기를 심어주고 주께로 인도하는 데 강하게 사용하시는 사람이다. 앞으로 있을 여섯 주제로 된 이 연재물을 지켜보아 주길 바란다. ‘조용기 목사와의 만남’, 분명히 여러분에게도 용기를 주고 생명을 선포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