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호 안수집사 (논설위원, 행정학박사)

 ‘민족’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한국인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제의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정신’을 강조했다. 박은식에 따르면 그것은 ‘국혼’이었고, 정인보에 따르면 그것은 ‘얼’이었다. 그 시절의 선각자들은 ‘민족교육’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고,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일본 식민통치와 목숨걸고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욕망은 상당히 집요하다. 남과 북, 좌와 우, 안과 밖을 막론하고 지난 1백년 동안 한반도를 흐른 민족에 대한 강도나 포괄성은 상당히 컸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인에게 민족이라는 말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말은 그리 흔치 않다. 그것은 한국 민족이 오래도록 약소민족으로 강대국의 식민지와 제국주의에 시달렸다는 역사적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족주의란 개인과 집단이 민족국가에 대하여 갖는 마음의 상태이며, 한 민족이 살고 있는 국가의 독립과 자결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이념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선민의식이 강한 제국형 민족주의가 있고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저항 민족주의가 있다. 그리고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에서 추구하는 통합형 민족주의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동서냉전이 극에 달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념의 대결 때문에 ‘민족’이라는 화두는 꺼내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국가이익이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논리가 지배하면서 민족의 의미는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니엘 벨(Daniel Bell)은 이미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을 선언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에 대항하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거쳐 통합형 민족주의로 이전하는 단계에서 민족의 분열이 가속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이념의 대결은 남북분단이 고착된 상태에서  반세기를 훨씬 넘기고 있다.
 한편 경제성장과 더불어 세계화·지방화 그리고 정보화의 촉진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일체의식이 나날이 훼손되어 가고 있음은 더욱 안타가운 일이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세대간·계층간 갈등, 지역갈등 등 민족 내부의 상처는 골이 깊어 가는 느낌이다. 이러한 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사회 지도층을 격리시키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 것인 바, 이는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몫이라고 판단된다. 민족이 분열하면 약소민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서로 상대편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번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의 주이시고 심판자이시다(시 22:2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모든 다른 민족이 그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셨다(창 12:1∼3, 18:18).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시 67:3)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원거리 민족주의 이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마당에 우리 한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인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크게 이바지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