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수일수록 축복하라’
율법에 우선한 사랑이 인간관계의 핵심
선으로 악을 이기는 적극적 자세 필요
김봉준 목사(교무담당부목사)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우리는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좋은 이웃이 있는가 하면 나쁜 이웃도 있고, 때로는 원수같은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성경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 “원수를 사랑하며”(마 5:4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오죽하면 예수님께서도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했으며,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이웃과의 불편한 관계가 있으면 먼저 화해하고 나서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했겠는가? 이웃과의 대원칙은 너무나 분명하다. 용서하라, 사랑하라, 축복하라, 평화하라, 선으로 악을 이겨라! 이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만 바로 하려고 애쓴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른 신앙은 바른 생활로 이어져야 한다. 신앙은 관념 속에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생활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신앙도 잘못된 것이다. 이웃과의 관계는 단순한 이웃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로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불화하면 사람과도 불화하게 되고 사람과 불화하면 하나님과도 불화하게 되는 것이다. 가인을 보라. 하나님과의 불화는 즉각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핍박자를 저주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오히려 핍박자를 축복하라는 것이다. 축복기도의 묘미는 상대방이 받을 그릇이라면 빈 축복이 그에게로 가겠지만, 받을 그릇이 못되면 내게로 오는데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우리는 누구에게 복을 빌어야 할까? 복 받지 못할 사람만 골라서 축복한다면 그 복이 어디로 갈까? 내게 올 복이 많으려면 원수를 위해 부지런히 축복하라. 그러면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고, 축복도 덤으로 받고, 화평을 이루게 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가 된다. 원수를 위해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숯불을 그 머리위에 얹겠다는 것이다(롬 12:2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는게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용서하고, 사랑하고, 축복하여 화평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다.
우리의 실력으로 악한 자에게 절대 악으로 이기지 못한다. 악한 자 마귀의 신들메를 풀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악에 대해서는 초보자이다. 그러나 마귀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우리는 갖고 있다. 사랑이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했으므로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악한 자를 K.O. 시키는 것이 된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비결이다.
스데반이 죄 없이 죽어가면서 자기에게 돌던진 사람을 향해 ‘어디 두고보자’고 이를 바드득 갈았다면 그의 죽음은 헛되었을 것이다. 그는 용서했고, 사랑했고, 축복했다. “하나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그럴 때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이 났다. 그의 용서는 함께 돌 던진 바울을 포로되게 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탄생되게 했다. 하나님께 맡기자. 내가 할일은 용서하고,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채권자는 채무자를 위해 축복하자. 피해자는 가해자를 위해 축복하자. 핍박받는 자는 핍박자를 위해 축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