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까지 버리신 사랑의 완성
이웃사랑에 대한 구약의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눅 10장)를 들며 이 질문에 답하셨다. 비유에서 예루살렘은 교회이고, 여리고는 세상이다.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은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고, 강도는 사단과 그의 귀신들이며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를 교회로 되돌아오게 하는 형제라고 많은 설교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는 그럴듯해 보인다. 어찌보면 이 말은 ‘나’의 책임을 회피하기에도 좋은 말이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질문을 던졌던 율법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고 하시면서 말씀을 마치셨다. 딱한 형편에 처한 자가 있으면 우리가 그의 처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남이 먼저가 아닌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발견한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건 내가 될 수도 있고, 네가 될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셈이다.
구약의 계명에서 의미하는 사랑은 한계가 뚜렷했다. 이 사랑은 자애(自愛)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내가 곤경에 처해 있지 않는 한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내가 곤경에 처하게 되면 이웃에 대한 사랑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신약의 사랑, 곧 예수님의 사랑은 구약의 계명을 초월하고 있다. 성경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형제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가난과 질병에 있던 사람들을 무수히 고치셨다. 그리고 그 사랑의 완성으로 우리를 위해 몸 찢고 피 흘려가며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분은 우리를 자기보다 더 사랑하셨다. 구약에서 말한 ‘네 몸과 같이’를 초월한 사랑이 이 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케 되는 교훈은 이제 분명하다. 우리는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해야 한다. 언제까지? 영원히, 그리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은 하나 남은 빵을 반쪽으로 나누어 이웃에게 주는 것과 견줄 수 없다. 빵뿐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 이웃을 위해 주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리고 명령하신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