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안에 감춰져 있는 왜곡된 가치관

 사람들은 왜 TV드라마를 보는가? 답은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혹은 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TV드라마를 본다는 시청자들도 결국엔 이들이 재미있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특히 TV드라마는 현대인들에게 ‘storyteller’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혹은 허구이든 시청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TV드라마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또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물론 그런 충족감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요체임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재미있게 만든다는 것이 TV드라마 제작과정에서 최우선 과제가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다는 데 있다.
 TV드라마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허구의 세계이다. 따라서 TV드라마 속의 세계는 결코 현실세계와 동일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으며 그렇다면 이미 그것은 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세계를 참조하여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드라마 제작인 만큼 허구화 과정은 어느 정도 현실세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허구화 과정에서, 즉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드라마의 내러티브(서사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드라마 제작진(방송사, PD, 작가, 연기자, 언론, 시청자 등)에 의해 어느 정도의 왜곡이 수반되게 된다. 장르적 특성상 주제의식과 메시지를 함유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는 그 속에 내재한 다양한 가치관들로 인해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들을 수반/운반하는 전달체의 역할도 하게 된다. 때로는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으로 또 가끔은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으로 포장되어 혹은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방법으로 왜곡된 현실은 우리의 의식 속에 조용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현실감’과 ‘일상성’을 무기로. TV드라마 속에 숨겨져 있는 왜곡된 가치관 중 특징적인 것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편향된 성역할 가치관
 주로 가정을 중심으로 한 홈드라마들은 친(親)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시청자들에게 남성우월주의라는 왜곡된 가치관의 주입과 이데올로기의 전파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다. ‘가진 자’로서의 남성은 여성에 대한 우월적 권리를 확보,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이용, 남성중심의 지배적 가치를 유포해 나가는데 특히 획일화된 집단 이미지를 대량 생산하는 TV드라마는 주시청자층인 여성들에게 남성지배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역할을 해내는 대표적인 대중매체로 지적되고 있다.
 2. 물질만능주의적 가치관
 텔레비전 텍스트에 내재되어 있는 유물론적 가치관은 행복의 가치척도를 물질적 풍요의 많고 적음으로 등식화시키고 있으며, 부유함에 대한 존경과 빈곤함에 대한 천대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부(富)=선(善) : 빈(貧)=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가치를 내포·유포함으로써 그 문화의 소비자인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가정이나 경제적인 생활수준에 불만을 갖게 하여 결국 이와 관련된 불필요한 열등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주의 깊은 시청태도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3. 신체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외모지상주의적 가치관
 외모지상주의적 가치관은 다음의 극단적인 두 가지 전략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는 못생긴 외모를 소유한 사람에 대한 비웃음, 따돌림, 무시, 비중 낮은 배역에의 기용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처벌(處罰)전략이며, 두 번째는 이와 반대되는 경우로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한 사람에 대한 찬사, 존경, 비중 높은 배역에의 기용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보상(報償)전략이다. 즉 ‘매력적 외모’는 부(富), 훌륭한 학벌 등과 함께 ‘선(善)’ 혹은 ‘승리’의 개념으로 의미화되어지는 반면, ‘못생긴 외모’는 가난, 무학(無學) 등과 함께 ‘악(惡)’ 혹은 ‘실패’의 개념으로 의미화되고 있다.
 TV드라마 속 세상은 사회 현실 그대로의 반영이 아니라 매체의 상업적 특성에 의해 의도적으로 강조되고 일부분으로 편향된 ‘재구성의 현실’이다. 성역할의 편향성,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등과 같은 왜곡된 가치관에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출은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시청자군(群), 즉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현실인식과 인격형성에 잠재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은 미디어효과론에 입각한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유해성 가치관이 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의 주류적(主流的) 가치관으로 치환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