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만 낳자’는 옛말 오늘날 하나도 잘 안 낳아
‘무자식 상팔자’족,나홀로 족 등이 표면적 원인제공
출산 여성의 편견,사교육비 부담 등도 큰 몫 차지해
아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아이들의 수가 점점 줄고 있어 우리나라를 긴장시키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2001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3명. 임신이 가능한 여성 1명이 평균적으로 자녀를 1.3명만 낳는다는 의미다. 1950년대에 5.4명이었던 출산율은 1980년에 2.83명을 기록하더니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1.5명으로 급강하했다. 그리고는 급기야 세계 최저수준인 1.3명에 도달한 것이다. 이는 저출산국으로 알려진 프랑스(1.89명)보다도 낮은 수치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체코(1.14명), 이탈리아(1.25명), 스페인(1.22명)에 이어 네번째로 낮은 것.
상황이 이렇고 보니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을 면치 못하고, 출산율 저하로 인한 갖가지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예로, 유아용품과 분유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경우 수익악화와 주가하락으로 비상이 걸렸다. 신생아 출산이 감소하면서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를 외쳐대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원색적인 표어도 있었더랬다. 너무 많이 낳아 문제가 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같은 현상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일까? 어떤 이유로 출산율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여성들은 출산을 기피하는 것일까?
결혼 2년째인 회사원 윤모(28·여·서울 양천구 신정동)씨는 최근 남편과 합의 하에 임신 2개월된 뱃속 아이를 양가 부모 몰래 지웠다. “애를 키울 사람이 없어 내린 결정”이라고 말끝을 흐린 윤씨는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긴 싫었다”고 말했다(한국일보 1월 12일자).
위의 내용에서도 나타나듯이 보육문제는 출산기피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제도적 장치는 아직 미비하다.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가 3개월을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이 과연 얼마나 될까. 출산으로 인해 승진에서 차별을 당하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여성의 몫이다. 탁아시설도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니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보자. 아이를 낳은 후도 문제지만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한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직장생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야 하는 힘든 일상에서 임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말해 출산이냐, 일이냐를 놓고 양자택일의 운명에 처한 여성들이 이제는 점점 일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만이 아니다. 자녀 양육에 필요한 비용 역시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막대한 돈이 가계에 부담을 줄 정도니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고 즐기며 살겠다는 젊은부부들이 늘고 있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의 약칭)의 출현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만혼과 독신여성의 증가도 저출산율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통계청의 ‘2002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29.6세, 여자 26.8세로 2000년보다 0.3세씩 늦어졌다. 인구 1천명 당 혼인율도 6.7건에 불과하다. 2000년과 2001년을 비교해 볼 때 1만4천건이나 감소한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가족보건실태조사에 의하면 결혼 필요성에 대한 태도에서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응답이 25∼39세 연령대에서 45%이상을 차지했고,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13.8%에 그쳤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은기수 교수도 지난해 10월 30일 ‘출산율 1.30 진단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0차 여성정책포럼에서 미혼여성의 증가가 저출산율의 주요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출산율의 저하는 보육문제, 양육비 부담 등 외적인 요인과 딩크족, 만혼, 독신풍조 등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될 사회적인 문제이며, 이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