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지상주의로 인한 드라마의 사회성 상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유난히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하다. 그만큼 방송사들에게 있어 경쟁력 있는 TV드라마의 제작 및 편성은 열렬한 미디어 소비자들의 호응만큼이나 짭짤한 광고수입을 보장해 주는 효율적인 재원(財源)이 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국내에서 ‘뜬’ TV드라마들이 중국 등 해외에 수출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어 방송사의 부수입을 적잖이 늘려주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TV드라마군(群)은 이들이 창출해내는 고효율의 부가가치로 인한 경제적인 실익(實益)이외에도 근접 편성된 다른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 등 방송사의 전체적인 스테이션 이미지의 향상과 관련하여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TV드라마 제작은 방송사 입장에서 사활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지나치다 보면 무리수가 생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드라마와 관련된 시청률 지상주의의 폐해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TV드라마의 대표적인 문제점을 살펴보면 먼저 드라마 편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5%가 넘는 비율을 나타내 일본, 영국, 독일 등에 비해 50% 이상 과다편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내러티브에 충실한 정통 드라마보다는 감각적, 표피적, 극단적 성격을 지닌 볼거리 위주의 드라마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에피소드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는 이러한 문제점을 대표하는 장르이다. 마지막으로 불륜, 이복, 죽음, 폭력 등 극단적인 내용 위주로 소재가 편향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모든 부정적 결과들의 근본원인은 다름 아닌 시청률 지상주의로부터 기인한다.
 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와 관련, 시청률은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필자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시청률 지상주의와 관련된 한국 드라마의 병리적 현상을 세 가지 측면(드라마의 사회성 상실, 잘못된 가치관 전달, 스타시스템의 과도한 의존)에서 살펴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사회성 상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드는 것은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로 가정을 중심으로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합 등을 주요소재로 삼는 홈드라마의 형식을 띤 일일극의 경우, 시청률이 높은 주시청시간대에 동일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게 된다. 그러나 시청률 경쟁의 포연이 자욱한 우리의 방송현실에서는 이러한 일일극들이 자사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주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어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가족들을 출근 혹은 등교시킨 뒤 혼자 남은 주부들을 주시청자층으로 제작, 방영되는 아침 일일극과는 달리 각 방송사의 저녁종합뉴스가 방송되는 오후 9시 혹은 8시 뉴스와 연결되는 저녁 일일극은 편성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일부 연구를 통해 일일극의 시청률이 곧 저녁종합뉴스의 시청률과 유의미한 관계를 지닌다는 분석이 등장하면서 각 방송사는 일일극 경쟁에 사운을 걸다시피 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만큼 치열한 시청률 경쟁의 현장이 바로 일일극 시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일극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의미는 점차 소멸되어가고 있으며, 본질은 사라지고 주변만 부각되는 현상이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다.
 일일극을 둘러싼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으로는 ‘고무줄식’ 늘이기 편성과 캐릭터 중심의 비정상적인 스토리 전개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드라마 한 편이 어쩌다 ‘떴다’하면 도무지 끝낼 줄을 모른다. 적정량을 넘어서다 보니 작가가 애초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실종되고, 캐릭터 중심으로 드라마가 진행된다. 내용이나 주제와 같은 내러티브의 완성도보다는 성공적인 캐릭터의 창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결국 ‘속빈 강정’이 되고 만 꼴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일부 드라마는 이와 같은 악수(惡手)를 거듭하고 있는 듯하여 참으로 안타깝다.
 일일드라마가 반드시 계도성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문화적 엄숙주의를 강조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제살 깎기’식 시청률 다툼으로 인해 드라마 고유의 주제의식과 메시지, 그리고 사회적 의미가 훼손된다면 결국 방송사와 시청자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 하에 방송사간의 소모적인 시청률 경쟁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