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경시대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숭배
아세라, 구약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여신
아낫, 전쟁의 여신으로 군인의 용맹성 비유되기도
아스다롯, 성경에서 아쉬토렛으로 변형되어 사용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국시대 동안 계속 갈등하고 유혹받던 가나안 종교는 다산과 풍부한 수확을 기대하게 해주는 다산종교(fertility religion)였다. 가나안 종교에는 여러 신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바알과 그의 배우자들이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난다. 바알은 가나안 종교의 중요한 신으로 구름을 타는 자이며 폭풍과 번개를 일으키는 자로 농경에 필수적인 비를 공급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에게는 여러 명칭의 여신들이 파트너로 등장하고 있는데, 바알과 같이 언급되는 풍요의 여신들은 다음과 같다.
1. 아세라
아세라(Asherah)는 구약성경에서 여신이나 그 여신을 상징하는 나무의 명칭으로 나타난다. 우가리트 문헌에서는 아디라트(Athirat)로 나오며 가나안의 최고신 엘의 배우자요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아합왕 시절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백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백명과 신앙의 대결을 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세라는 바알과 함께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다. 사사기 3장 7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세라들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복수형인 아세롯(Asheroth)으로 쓰였는데, 아세롯은 아세라뿐 아니라 아스다롯, 아니면 아세라의 지역적 변형이나 가나안의 여신들을 총칭하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아세라들로 번역된 아세림(Asherim)이란 단어도 있다. 아세림은 살아있는 나무(숲), 또는 나무로 깎아 만든 신상을 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아세림은 아세라를 상징하는 목상을 의미할 것이며, 바알 주상이나 조각한 우상들과 같이 세워져 있었다(신 7:5). 유다의 아사왕은 아세라 목상을 만든 태후 마아가를 폐비시키고, 그 목상을 불태워 버렸다. 여로보암 1세를 비롯한 북왕국 왕들과 므낫세 등은 이러한 목상들과 주상들을 세워 범죄했으나, 기드온과 아사, 히스기야, 요시야 등은 이를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다.
2. 아낫
구약성경에서 아낫(Anath)이라는 명칭은 흔치 않다. 아낫이 들어간 지명들은 아나돗(수 21:18), 벧 아낫(수 19:38), 벧 아놋(수 15:59) 등으로 그 용어들은 여신 아낫을 섬기던 아낫의 집을 뜻한다. 인명에서 보면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활동하였는데(삿 3:31), 삼갈이란 명칭이 후리족에서 유래하는 비이스라엘 계통의 이름이어서 아낫의 아들에 이교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문화에서는 아낫이 전쟁의 여신이었으므로 용맹스러운 군인의 기상을 드러내는 단순한 의미였을 것이며, 혹은 삼갈의 아버지가 그런 의미로 여신 아낫의 이름을 따라 자기의 이름을 지은 것일 수 있다.
바알 서사시에 의하면 아낫은 용맹스런 무적의 전사로 사람을 죽여 시체를 잘라 몸에 묶고 피범벅된 속에서 전투를 즐기는 여신이다. 그녀의 태도는 무척 거칠고 방자하여 최고신 엘 앞에서 바알에게 신전을 지어주도록 윽박지른다. 바알이 자기의 신전을 지은 후 죽음의 신 못(Mot)에 의해 죽자 아낫은 바알의 시체를 찾아 묻고 그를 애도하며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한다. 아낫은 암소가 그 송아지를, 암양이 그 새끼양을 그리워하듯 사모하는 마음이 솟구쳐 올라 못과의 결전을 통하여 그를 사로잡아 죽인다. 결국 바알은 다시 살아나고 그의 보좌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아낫은 그녀의 잔인성과 맹렬함으로 인해 여러 문헌에서 아세라나 아스다롯보다 크게 부각되고 있으며, 그 열정으로 인하여 바알의 배우자로 자주 이해된다. 아낫은 날개를 가진 여신으로 묘사된다.
3. 아스다롯
구약성경에서 아스다롯(Ashtaroth)은 복수형으로 빈번하게 나타나며 단수형인 아쉬토렛(Ashtoreth)은 오직 세번 나타난다(왕상 11:5, 33; 왕하 23:13). 아쉬토렛은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 아쉬타르트(Ashtarte)로 기록되었다. 아쉬타르트는 메소포타미아의 다산의 여신 이쉬타르이며 금성(Venus)이 그녀의 상징인데, 종종 무기를 지니고 말을 타고 있는 나체의 여자로 묘사된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이교적 풍요여신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아쉬토렛으로 변형시켰을 것이다.
아스다롯은 “하늘 황후”로 언급되고 있으며, 그녀에게 과자를 바치고 향을 태우며 전제를 부어 드렸다(렘 7:18; 44:17, 18). 아스다롯은 주전 1천년기에 페니키아의 전역에 걸쳐 숭배되었다. 그녀는 두로의 주요 여신으로 멜카르트와 바알샤멤 등과 함께 섬겨졌고, 키프러스와 에트루리아에서도 숭배되었다. 주전 6세기에는 여신 티니트(Tinnit)와 동등시되었으며, 페니키아 신화에서는 크로노스나 제우스의 배우자로 등장한다. 아스다롯은 왕권의 상징으로 머리에 황소머리를 썼는데, 성경의 아스드롯 가르나임이란 지명(창 14:5)은 ‘두 뿔의 아스다롯’이란 뜻으로 그러한 아스다롯의 특성을 반영해 준다.
가나안 종교에서는 신들이나 인간세계 모두 남성과 여성의 생산 기능에 의해서 생성 변화된다고 여겼다. 따라서 다산제사와 풍요의식은 농부들에게 매우 중요했고, 그러한 종교의식은 보편화되어 많은 풍요의 여신상들을 신전에 세웠을 뿐 아니라 가정에도 모셔놓았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과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해를 비추고 비를 내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한상인 교수 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