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목적과 자원확보의 큰 몫 차지


성벽, 견고한 도시 확립 위한 중요수단
성문, 시장·재판소·제의장소·회의소로 사용

 고대 도시들은 대부분 전략적 요인과 수자원 확보라는 두 요소에 의해 입지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두 요소는 상반되는 조건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곳은 언덕이나 산인 반면에, 물은 골짜기에서 흔히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충방법으로 수자원을 함께 에워싸 요새를 건설하거나 적절한 수단을 통하여 성내로 물이 흘러 들어오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중심적 도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중심 도시 주변 지역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위성도시를 건설하여 통신망이나 도로, 수자원, 보급기지 등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천연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지역들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들은 옛 도시들의 폐허 위에 재건설되는 일이 많았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텔(tel)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텔에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하였지만, 수백 수천년이 지나면서 두 가지 중대한 결함이 나타나게 되었다. 우선 텔이 높아질수록 취약하게 되었는데, 이는 암반 위에 성벽을 세운 것이 아니라 이전 도시들의 폐허 위에 세워져 성벽의 기초를 파고 공격하기가 쉽게 된 것이다. 또한 텔이 높아질수록 도시 면적이 좁아지게 되어 거주 인구의 감소와 함께 방어 병력의 감소를 야기시킨 것이다. 이처럼 왕국시대에는 도시의 건설도 중요했지만 기존도시의 방어도 무척 중요하였다. 그러므로 고대도시의 방어 체계의 중요한 요소인 성벽과 성문의 구조와 그 변화에 대해서 살펴본다.

 1. 성벽
 이스라엘 왕국시대의 성벽은 주전 10세기 이후부터 발달된다. 그때 솔로몬은 야웨의 전을 비롯하여 예루살렘과 하솔, 므깃도, 게셀에 궁전과 도시를 건설하고, 그밖의 지역에 병거성과 마병성 등을 건축하였다(왕상 9:15-19). 다음 세기가 되면 거대하고 견고한 성벽이 북왕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 출현하고, 남왕국에서도 예루살렘, 라기스, 텔 엔 나스베 등 많은 도시에 나타난다. 이러한 견고한 성벽은 기초석 위에 단단한 돌이나 벽돌로 건축한 것으로 두께는 2-7m이다. 건축 양식은 무척 다양하며, 톱니형 성벽, 요철형 성벽, 이중성벽, 탑형성벽, 돌출난간이 있는 성벽, 경사면 아래에 지지멱이 있는 성벽, 경사 제방을 가진 성벽 등으로 세분되지만, 크게 외곽 주거성벽, 포곽성벽, 육중성벽의 세 종류로 구분된다.
 먼저 외곽 주거성벽은 주거로 외곽을 둘러싸 성벽의 역할을 하는 형태이다. 므깃도에서 발견된 외곽 주거성벽은 가옥과 궁전이 도시 외곽을 형성하고 있다. 다음으로 포곽성벽은  주전 10세기에서 8세기 말까지 이스라엘의 특징적인 성벽으로, 포곽 성벽의 방들은 성안의 도로를 향해 입구를 가지고 있다. 그 방들은 평화시에는 저장소나 수비초소로 사용되고 전쟁시에는 돌과 흙으로 채워져 성벽을 보강했다. 또한 육중한 성벽은 5-6m에 달하는 거대한 두께를 가진 성벽이며, 성벽의 보강을 위해 톱니형 성벽을 만들거나 사격을 할 수 있도록 다른 성벽보다 훨씬 높은 탑(텔 엔-나스베, 게셀, 라기스 등)을 만들기도 했다. 주전 8-7세기의 이스라엘 성벽을 그린 앗시리아 부조에서 이런 성벽이 확인된다.
 이와 같이 왕국시대에는 이전의 국지적 전쟁보다 훨씬 규모가 커진 이집트의 원정과 앗수르의 원정 등으로 방어시설이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도시의 공격과 방어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왕국시대의 국제적 전쟁은 보다 견고하게 요새화된 도시를 만들게 하였다. 포곽성벽에서 육중성벽으로의 변화는 이러한 시대사조를 반영해 주는데, 구체적으로는 주전 9세기 중엽에 등장하는 앗수르의 공성퇴에 대응한 것이다. 히스기야 시대에 속하는 예루살렘의 7m에 달하는 성벽도 산헤립왕의 공격에 대비하여 출현되었다. 물론 브엘세바에서는 주전 9-8세기에 육중성벽에서 포곽성벽으로 거꾸로 변화된 예도 있다. 왕국시대에 성벽을 가진 주요 행정도시들은 보통 2-3천명의 인구가 거주했으며,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같은 수도에는 1만명 이상이 거주했다. 그래서 인구가 증가하면 도시의 외곽 성벽을 증축해야 했다.

 2. 성문
 왕국시대에 약 20개의 성문이 발견되었는데, 많은 성문에는 거대한 두 개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 탑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의자나 석제 대야도 놓여 있어서 평화시기에 사용되기에 적합하게 되었다. 성문은 본래적인 방어기능 이외에도 시장(왕하 7:1), 재판장소(신 21:19; 암 5:12), 제의 장소(왕하 23:8), 회의장소(왕상 22:10; 사 29:21; 암 5:10) 등으로 사용되었다. 성문에 딸린 방들은 협정 체결이나 상거래 시에 장로와 재판관, 예언자, 비상시에는 왕의 자리로 사용됨으로써 성문은 도시의 사회적 종교적 군사적 중심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성문의 부속 방들은 대체로 6개에서 4개, 2개로 변화되었는데, 그 까닭은 위에서 언급한 평화 시기의 이용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의 구조는 대체로 솔로몬 시기의 6개 방의 성문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된 4개 방의 성문으로 변화되었으며, 그후 2개 방의 성문이나 방이 없는 성문으로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상인 교수(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