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과 성령으로 빛과 소금 역할을”
초대교회 사회변혁 위한 역동적 능력 본받아야
성결된 삶 위해 매진하는 성도 자세 절실
개신교인들은 “종교개혁” 하면 당연히 루터를 떠올리고, 그가 주장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을 개신교 신앙의 대원칙처럼 여긴다. 그런데 오순절적 입장에서 보면 루터가 그렇게 곱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성경보다는 성령의 계시를 주장하는 토마스 뮌쩌와 맞섰기 때문이다. 뮌쩌는 말씀을 강조하는 루터에게, “성경을 백번 삼켜도 성령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성령의 대한 바른 이해와 체험 없이는 참다운 종교개혁은 있을 수 없다. 루터가 개혁을 부르짖은 지 100년이 지난 후 루터주의는 신앙고백주의로 흐르고 말았으며 성도들의 삶은 말씀과 유리되고 말았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루터의 종교개혁적 모토들은 단지 듣기 좋은 수식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의 세 기치를 오순절적 입장에서 재조명해 보겠다.
1.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는 가톨릭의 공로 사상에 대한 루터의 저항이었다. 믿음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공로가 아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를 힘입는 것이다. 믿음으로 얻는 의는 “전가되는 의”이지 “주입되는 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의인은 하나님 앞에서는 법정적으로 의인이지만, 행위로 볼 때 세상에서는 여전히 죄인이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였다. 사실 루터의 후예들은 “오직 믿음으로”를 신앙고백으로 이해하였으며, 신앙고백주의로 흐르고 만 그들의 삶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 믿음과 성령은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두 요소이다. 많은 개신교인들은 신앙을 처음 권유받을 때 성령(체험)에 대한 언급은 들어보지 못한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전도 받을 뿐이지,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성령님과 함께 사십시오”라고 전도 받지 않는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과 성령을 함께 증거하였다(행2:38; 9:17). 성령과 함께 시작하는 삶이었기에 초대교회는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역동적인 힘이 있었다. 성도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는 살지만 “성령과 함께” 살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삶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는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라는 종교개혁적 기치가 “오직 믿음과 성령으로”라고 고쳐 불리워질 필요가 있다.
2. 오직 말씀으로
“오직 말씀으로”는 전승과 교황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게 취급하였던 당시의 신앙과 신학에 일침을 가하는 루터의 외침이었다. 어떠한 철학이나 신학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권위 있을 수는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는 말씀의 권위를 부인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상실이다. 입으로는 말씀의 권위를 부르짖으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삶에 권위있게 행사되지 못하는 것은 말씀에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바울이 롬 8:1-4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성령과 함께하지 않는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한다. 그것은 율법이 되고 만다. 바울은 성령을 받고 난 후, 성령 없이 율법만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반하여 살도록 하지 않는다. 성령과 말씀을 양자택일의 원리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말씀이 참다운 하나님의 권위를 지니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은 단지 양피지에 새겨진 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루터의 종교개혁의 원리가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의미 있게 역사하기 위해서는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라는 문구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3. 오직 은혜로
루터가 “오직 은혜로”라고 했을 때,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은 이 말을 “모든 것을 은혜스럽게”라는 의미로 이해해서 “잘못을 너그럽게 덮어주는” 행위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개신교의 큰 약점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르고 선한 삶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되기 위해서 성도는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한다(롬 8장; 갈 5장). 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산다고 말하는 자들은 자신의 삶이 “성결한 삶”인지 심각하게 반문해 보아야 한다.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하였다(요일 3:9).
은혜의 삶은 성령과 함께 사는 삶이며,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사는 삶이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들은 성령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고, 인격적으로 존경받고 칭찬받는 삶을 살았으며, 그 사역 가운데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가 풍성하게 나타났다(행 6-8장). 개신교는 가톨릭에 반해서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은혜”라는 말씀을 늘 듣는다. 이것은 루터의 공헌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들이 성도들의 삶 가운데 바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루터가 부르짖었었던 종교개혁적 신앙의 원리는 오순절적 성령의 역사와 체험에서 비로소 실천되고 완성되어진다.
오순절훈련소 소장 임형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