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톤으로 곱게 물든 산하(山河)

 가을은 참으로 묘한 계절이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고 낙엽이 뒹구는 모습을 보면 저마다 시인이라도 된 듯 사색에 빠지게 만든다. 그게 바로 가을의 묘미일는지도 모르겠다. 7, 80년대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던 남이섬. ‘강변가요제’의 무대였고 ‘겨울나그네’의 민우와 다혜가 사랑을 속삭이던 바로 그곳. 잣나무, 사시나무, 물푸레나무, 은행나무, 삼나무 등 갖가지 숲이 울창한 남이섬이야말로 숲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가 아닐까. 향락적인 유원지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동화의 나라로 변신한 남이섬에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껴보자.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남이섬. 가을이라고 해서 연가를 못 만들 이유야 없지 않은가.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한껏 분위기를 잡아보리라.
 주말도 아닌 평일, 한가한 여행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배 안은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출발한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니 비로소 가을 여행 분위기가 살아난다.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춘천과 가평의 경계에 있는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단다. 작은 봉우리였지만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주변이 물에 잠기고 봉우리는 섬이 되었다. 그래서 가리비 모양을 한 지금의 남이섬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육지에서 섬까지는 약 4백m, 5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드디어 남이섬에 발을 딛었다. 낭만의 섬답게 정문에는 낭만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에 몸을 싣는 것도 제법 재미난 일이겠지만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잣나무길을 걸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남이섬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낭만 열차를 뒤로하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수령 50년생 이상의 잣나무가 양 길가에 일렬로 들어선 잣나무길은 일명 ‘사랑의 오솔길’이라고도 부른다는데 가히 그리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 싶었다. 잣나무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의 잔디. 여름내 초록 잎을 자랑했을 테지만 이제는 탈색되어 가을 냄새를 풍겨내고 있다. 그 뒤쪽으로는 캠프촌에 자리잡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텐트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잣나무길을 빠져나와 자전거를 빌려 탔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양 열심히 페달을 밟아본다. 얼마 못 가서 또 다른 모습의 매혹적인 손길이 유혹을 한다. 온통 황금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길, 그리고 그 왼편으로는 메타세쿼이아가 숲을 이루고 있는 겨울연가길이 펼쳐진다. 겨울연가길은 선남선녀들의 사진 촬영 장소로 애용되는 곳. 마침 젊은 여성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나름대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시 은행나무길로 들어섰다. 어쩜 저리도 고운 빛깔을 내었을까 싶을 만큼 탐나는 은행잎들이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들어낸다.
 다시 강변 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삼나무길이 보인다. 강둑은 소나무와 사시나무가 섞인 숲길. 가을의 정서를 감상하기에는 제격이다. 숲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시다. 이른 새벽에는 물안개가 가득 피어나 더욱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파스텔을 칠해 놓은 듯 은은한 색으로 치장한 단풍들을 보며 방갈로와 별장이 줄지어 있는 섬의 끝자락을 산책하고 나니 기분도 한층 상쾌해진다.
 사계절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선사해주는 남이섬에서의 하루. 귓가에선 아직도 가을연가가 맴돈다.
남이섬=글/윤은정 기자 ejyun@fgtv.com
사진/김용두 기자 ydkim@fgtv.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