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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학적 패러다임을 위한 ~

 

 

 

 

 

“조용기 목사의 치유신학에 대한 종말론적 이해”

박문옥 박사(한세대학교대학원장)

 영산의 신학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집약되며 이는 전인구원의 기독교 신앙을 영역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산신학에서의 치유의 문제는 「순복음의 7대 신앙적 기초」에서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으로, 「오중복음」에서 ‘신유의 복음’으로, 「삼중축복」에서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영산에게 있어서 치유는 그의 신학의 출발점이며,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치열한 신앙현실이었다. 영산의 45년 목회는 질병과 가난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죄적 인간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제사장적 자세를 견지해 왔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영산에게 있어서 치유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었고,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확신이었다. 따라서 영산에게 있어서 치유는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현상이었으며,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서의 부활의 성례전이었다.
 조용기 목사의 개척교회가 빈민촌의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게 된 여러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치유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조용기 전도사는 치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철학의 핵심 중의 하나로 삼았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말할 때, 복음에 저항적인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변화되어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산의 강력한 치유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에 근거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성령의 능력 안에서 계속된다는 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치유의 목회는 영산 자신이 폐결핵을 치료받은 체험적 신앙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영산의 초기(1958-1961) 설교는 믿음에 따르는 표적,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좋으신 하나님에 집중되어 있다. 절대 절망의 사람들에게 절대 희망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며, 갖가지 상처로 고통받는 성도들을 성경말씀으로 치유하며,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 영산의 목회였다. 영산에게 있어서 목회의 현장은 성령의 임재적 능력(the attending power)이 나타나야 하는 자리였다.
 오늘날 기독교는 두 가지의 정반대 되는 종말론의 해석 사이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은 머지않아 일어날 “마지막 일들”의 전통적인 의미에서 종말론을 생각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다. 다른 한쪽은 종말론을 사회 도덕적 목표와 관련시켜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계몽운동 이후의 신학자들”이다.
 영산은 사도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마지막 시대’로 이해했다.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현재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원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영산은 오순절 성령 운동이 하나님의 역동적인 구원활동을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나타남이라고 보았다.
 영산은 미래에 완성될 왕국(마 6:10)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통치의 표징으로서 현재적인 하나님, 즉 이 시간에도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심으신 사건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치유의 목적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실제적으로 체험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 개인의 삶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성취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미래에 완성될 왕국을 소망함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현재성(nowness)과 임재성(hereness)으로 체험해야 된다는 것이다.
 영산에게 있어서 치유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charisma)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 중에 포함되어 있는, 반드시 증거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영산은 치유 사역이 반드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목회 현장에서 병고침을 실행하고, 스스로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영산의 45년 목회를 치유의 사역에만 한정할 수는 없다. 미증유의 교회성장과 세계 도처에서 전개되었던 치유의 역사, 지치고 낙심한 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새 힘을 얻고 예수의 증인이 된 수많은 일들을 모두 설명하기에 우리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산의 여러 사역 현장에서 세상의 끝자락에 서 있는 처연한 모습과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장엄한 모습을 함께 보게 된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는 말씀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영산의 사역은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영산의 치유 사역의 현장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증거하기에 충분하였고, 미래에 있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산의 치유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 되어질 일에 대한 보증을 받았다. 치유는 믿는 자의 부활의 예표이며, 동시에 부활을 선취하는 성례전적 사건이다.
 종말론과 하나님 나라, 그리고 성례전에 대한 이해는 매우 복잡하고 역사적 기술을 요하는 문제이다. 다만 ‘종말’이 우리에게 무엇이며, 믿는 자의 마지막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흔적(stigma)을 포착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치유는 영산에게 있어서 지나쳐 버릴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이정표였다. 하나님의 임재가 치유를 유발한다면 치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서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다.
 치유는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며, 그 권능이다. 치유는 다시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세상’에 대한 약속이며,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이다. 치유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또한 죄사함의 표지이기도 하다. 치유는 죄사함의 표지이면서, 동시에 부활의 성례전이다.

 

“순복음 신앙에 있어서의 선과 악의 문제:
조용기 목사의 삼중축복에 대한 신학적 기초 연구”

김삼환 박사(국제신학연구원장)     

 어거스틴에 의하면 일체의 선은 하나님 자신이든지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이 말은 선의 근원을 하나님의 존재에서 발견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며 그의 존재는 존재자체, 최고유로서 영원히 스스로 동일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조금도 포함하지 않는 순수현실유이시다. 존재자체이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시 106:1). 따라서 존재자체는 선하다. 또한 선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진 모든 것들도 그 존재의 원천이 선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선한 것임이 분명하다.
 고난과 질병 그리고 죄와 같은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도대체 우리는 어찌하여 죄, 타락, 고난, 질병과 같은 악을 경험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것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즉 그들 존재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는 영혼의 잘됨에 이어 육신의 건강과 범사의 잘됨을 말하는 삼중축복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삼중축복이 근본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바로 악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 악을 영혼에서 제거하는 것이 영혼의 구원, 즉 영혼의 잘됨, 곧 중생의 축복이요, 고난의 악을 삶 속에서 제거하는 것이 삶의 구원, 즉 삶의 잘됨, 곧 범사의 축복이요, 질병의 악을 육체에서 제거하는 것이 육체의 구원, 즉 육체의 잘됨, 곧 강건함의 축복이다.
 삼중축복이 악을 제거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리고 삼중축복이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간학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응답의 사실과 본질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라면 삼중축복의 문제는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루되 인간학적인 가치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신정론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것과도 직결된다. 이와 같이 형이상학적인 입장과 신정론적인 차원에서 선과 악을 다룰 때만이 악을 제거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관련된 삼중축복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악은 존재의 없음이요, 또한 존재가 덜해진 것, 즉 존재의 결핍이다. 존재는 선과 치환될 수 있으니 악은 선의 없음이요 혹은 선이 덜해진 것, 즉 선의 결핍이다. 악은 결국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선의 없음, 혹은 선의 결핍으로 정의된다. 
 하나님의 은총은 삼중축복의 선에 대한 인간학적인 희구를 파괴하지 않으나 완성시켜 주며 바로 이러한 완성에 초점이 맞추어 질 때만 삼중축복에 대한 논구는 신학적 의의를 지니게 된다. 사랑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하는 당사자 상호간의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차이와 거리내기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이러한 차이와 거리는 사랑의 유대에 의해 극복되어진다. 삼위일체의 경우를 보더라도 시간을 초월한 상태에서 사랑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삼위의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거리와 차이는 삼위 사이의 상호 사랑에 의한 유대와 사랑 안에서 모순 통합을 이루고 있다.
 순복음 신앙은 정죄하기 보다는 좋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용서를 강조하는데 이는 우리가 위에서 논한, 죄의 악에 대한 본질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해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순복음 신앙의 적극성은 영혼으로 하여금 죄악이 빚어내는 어두운 측면을 보고 거기에 빠져 좌절하도록 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빛 되신 구원사역을 체험케 해 준다. 
 순복음 신앙은 죄를 지은 자는 긍휼히 여겨 용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죄를 지을려고 하는 자의 악은 정죄하여 경고함으로써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선을 도모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와 타인의 영혼으로부터 죄의 악을 제거할 수 있게 되고 영혼이 잘되게 된다.
 삼중축복에서 육체가 강건해지고 범사가 형통케 되는 복에 대해 육체강건과 범사형통의 복은 존재론적이고 통전적인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선을 지향함으로써 완성되어져야 한다.
 축복은 인간이 자연적으로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인데 이러한 인간학적 입장을 하나님의 은총은 파괴하지 않고 완성시킨다. 만약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이러한 자연적인 욕구를 파괴시킨다면 신학은 인간학과 영원한 평행선을 그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내재하시지 않는 절대 초월자로서만 상정되어 버린다. 삼중축복, 즉 전인적인(혼, 육, 삶) 축복은 참된 인간이 자연적으로,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그 어떤 다른 것보다도 더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점에서 삼중축복은 다른 어떠한 신학적 이슈보다도 인간학적 요소를 신학이 간과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으로 상정시키고 있다. 그러나 인간 본성이 추구하는 바는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는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에 의해 완성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때에만 삼중축복은 본질적으로 신학적 본질을 획득하게 된다.
 순복음의 삼중축복의 신앙은 인간의 실존적 삶에서 체험하는 악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삼중축복 신앙은 다른 어떠한 신앙 형태보다 인간학적인 실존의 물음을 진지하게 묻게 된다. 삼중축복의 주창자인 조용기 목사가 처했던 그의 처절했던 실존상황들을 볼 때 그가 삼중축복의 주창자가 된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물음과 실존적  삶의 도상에서 발견되는 여러 현상적인 차원에서의 악의 문제들을 접함으로써 제기된 물음들은 좋으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그 해답을 얻게 되었고 이에 순복음의 삼중축복 신앙은 형성되었던 것이다. 결국 순복음 신앙의 형성의 단초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의 좋으심은 우리가 인간적 차원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좋으심은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악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며 이러한 이해가 신정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으로 발전되어 나아가야 하나님의 좋으심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삼중축복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야말로 삼중축복을 완성시켜 주는 참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조용기 목사와 세계 오순절.은사 운동”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교수, 성결교회역사연구소장)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의 교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교회를 설립하고 성장시켜온 조용기 목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특별히 조용기 목사가 어떻게 이렇게 큰 교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어왔다. 본 글은 한국의 오순절운동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조용기 목사와 세계 오순절운동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조용기 목사의 기독교입문과 세계오순절운동을 살펴보자.
 조용기 목사가 기독교신앙과 처음 접촉한 것은 그가 병중에 있을 때 누이의 친구로부터 복음을 들었다. 그러나 그가 보다 본격적으로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켄 타이스(Kenneth Tice) 선교사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원래 퇴역 해병대 출신으로 네비게이터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 타이스 선교사는 통역이 필요했고, 조용기는 그의 통역이 되었다. 조용기는 일찍이 영어에 큰 재능을 보였으며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세계오순절운동의 큰 그릇으로의 가능성을 보였다.
 둘째, 조용기 목사의 대조동 천막교회와 세계오순절운동을 살펴보자.
 조용기는 최자실 전도사와 함께 1958년 교회를 개척하였다. 조용기의 선교사와의 관계는 그 후에도 계속 지속되었다. 스텟츠 선교사는 개척교회의 건축을 도와주었고, 조용기는 존스톤의 통역으로 일하면서 그의 집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기거하고 있었다. 이 개척교회 당시에 조용기를 도와주었던 또 하나의 선교사가 버드의 부흥집회에 함께 왔다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하게 된 허스턴이었다. 서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이미 8년 동안 선교사역을 하던 그는 안식년을 맞이하여 한국에 왔다가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또한 허스턴은 조용기에게 세계적인 신유운동가인 오랄 로버츠 목사를 소개해 주었다. 이 당시 조용기 목사는 신유사역에 관한 글들을 열심히 읽었다.
 셋째, 조용기 목사의 서대문 시대와 세계 오순절 운동에 대하여 살펴보자.
 1959년 하나님의성회 아세아선교부장 켓챰(Maynard Ketcham)의 노력으로, 1) 신학교 대지 및 교사 신축이전, 2) 하나님의 성회의 부흥전도자 파송과 전도집회 개최, 3) 주요도시에 부흥전도관을 설립 등이 이루어졌다. 사실 이것은 “지구정복” 프로그램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지구정복” 프로그램의 중요한 목적은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부흥전도관을 세워서 이곳을 거점으로 선교하자는 것이다. 이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서대문에 세워진 순복음부흥회관(Full Gospel Revival Center)이었다. 1960년대부터 조용기 목사는 세계 오순절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1964년 한국하나님의성회의 대표로 그는 미국하나님의성회 50주년 기념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국제적인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2개월 동안 미국전역을 돌며 집회를 인도하였다. 이어서 1967년 5월에는 세계 오순절 총회에 아시아의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그 뒤 100일의 계획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였다. 1966년에는 한국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이 되었고, 그후 세계 오순절 세계협의회에 고문이 되었다. 1969년에는 하나님의성회 동북아시아대회를 한국에서 유치하였다. 이때 아시아의 지도자들뿐만이 아니라 미국하나님의성회 총회장 짐머만과 선교부장 호건과 같은 지도자들도 참석하였다. 이런 것을 통하여 조용기목사의 활동무대는 전 세계를 향하여 진출하게 되었다.
 넷째, 조용기 목사의 여의도시대와 세계 오순절·은사운동을 살펴보자.
 조용기 목사는 1973년 순수한 한국교인들의 힘으로 여의도에 한국 최대의 교회를 지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그의 사역은 더욱 세계 오순절운동과 유대가 깊어지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준공예배에 맞추어 제10차 세계 오순절대회(Pentecostal World Conference)를 유치하였다. 이 대회는 전세계의 오순절신자들이 모이는 것으로 3년마다 한번씩 열린다. 그리고 대회를 마무리하는 날 순복음중앙교회의 헌당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것을 통하여 세계 오순절대회에서 차지하는 조용기 목사의 위치는 더욱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장로교와 신학적인 논쟁을 치루면서 자신의 신학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여의도순복음교회내의 국제신학연구원이다. 이 연구원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에서 생겨난 사이비 기독교가 아니라 20세기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세계적인 교단인 하나님의성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사이비 논쟁을 헤쳐 나가려고 하였다. 이때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오순절운동의 역사와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가 세계오순절운동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1992년 9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제16차 세계하나님의성회 대회에서 세계하나님의성회 연합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전 세계 하나님의성회는 60개국에 약 3천만명의 성도를 가지고 있는 최대 오순절 단체이지만 국제적으로 단일기구가 없었는데 1992년 연합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에 조용기 목사가 선출되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회를 1994년 한국이 주최하여 개최하게 되었다. 이로써 조용기 목사가 세계 오순절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분명해졌다.
 조용기 목사는 한국의 어떤 목회자보다도 선교사, 특히 오순절선교사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어떤 의미에서 조용기 목사는 외국선교사와 공동사역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 그는 오순절선교사들의 조력자였다. 그는 통역자였고, 협력사역자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외국선교사들은 조용기 목사의 협력자가 되어 그의 사역을 국제화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외국인선교사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는 국제적인 오순절, 성령운동의 동향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을 자신의 사역에 적용하였다.


 

기사입력 : 2002.10.11. am 11:14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