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가장 처참한 죽음으로 기록되어 있는 십자가 사건이 무슨 큰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그러나 최대의 수치와 모욕의 상징이며 한낱 고문과 죽음의 형구(形具)였던 십자가를 바울은 목숨을 걸고 자랑했다. 그것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이타적인 행위가 일어난 곳이었기 때문이며, 그는 멀리서만 보고 듣고 알아왔던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며 사실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사실에 감화된 나머지 이 일에 대해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가히 십자가 사건은 바울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2천년 전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죽음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왜 잊혀지지 않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볼 때 그의 죽음 기록은 확실히 특별함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예수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4복음서를 볼 때 세상의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상한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마태복음의 1/3, 마가복음의 1/3, 그리고 누가복음의 1/4이 예수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다루고 있고, 더불어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 무려 1/2을 예수의 죽음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다. 성경의 상당 분량이 예수의 전생애 가운데 단지 그의 최후 24시간에 대해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예수의 죽음이 인간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을 위해 죽기 위한 것’임을 전하고자 한 것이다.
 다시 바울에게로 돌아가 보면, 바울과 예수의 십자가의 만남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 무참히 달려 죽었던 그 조야(粗野)한 십자가에서 세상의 찬란한 희망과, 믿는 자의 죄에 대한 속박의 종말, 또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널리 흘러 들어간 것을 보았던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외로운 한 사람이 자기 상실을 통해 하나님과 동료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회복하였고, 그 회복은 지구의 거대한 힘과 또 그와 결합된 어떠한 정신보다 위대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유한한 지적 한계로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Atonement)의 신비(神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외쳤으며, 덧붙여 “나는 단순히 믿음을 의지하고 십자가 앞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저들의 모든 죄책(罪責)감을 씻게되어 하나님과의 평화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매 나는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노라”고 영감(靈感)으로 외친 것이다. 느군나(Nguna)의 작은 섬인 새 해프리드 섬(New Heprides Island)의 한 교회에 걸린 화가 피터 밀내(Peter Milne)의 그림 아래에는 “그가 오셨을 때 빛이 없었도다. 그가 죽으셨을 때에는 어두움이 없었도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 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함이며 동시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한 자랑거리임에 주저함이 없다는 표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