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다니엘 선교사(U국)
복음의 철옹성 이슬람에 여성 틈새 전략 펼쳐
광활하게 펼쳐진 땅덩어리, 여러 민족들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중앙아시아. 21세기 이슬람권 선교의 교두보로 일컬어지는 그곳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천다니엘 선교사가 중앙아시아 U국으로 떠난 것은 11년 전인 1991년.
처음에는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나 선교사가 흔치 않았던, 있다해도 남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시절에 여성선교사의 등장은 현지인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신분이 도리어 장점으로 작용, 현지인들은 낯선 곳까지 온 한국여성을 도와주려고 노력했고 공공기관에서도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다.
중앙아시아 U국 A지역과 K국 O지역에 교회를 개척한 천 선교사는 어린이·청년·성인사역과 더불어 장애인·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특수사역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결핵환자 요양소를 방문, 죽음을 앞둔 이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여성사역자가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분야로 상담, 내적치유, 대체의학, 침술 등을 꼽는 천 선교사는 앞으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선교사역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목사라는 직분보다 선교사라는 이름이 더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천 선교사. 그는 여성 특유의 온유함과 드러내지 않음이 이슬람의 견고한 진을 허무는 데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배드보라 선교사(I국)
여성사역에 초점 맞춰 이루어낸 교회개척
1994년 선교제한지역 I국에 파송된 배드보라 선교사는 독신여성선교사로서의 강점을 살리며 활발한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접근이 쉽지않은 I국의 상황에서 여성선교사인 배드보라 선교사는 사역의 기본인 제자훈련과 양육을 중심으로 한 교회개척과 함께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린 어린이 사역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전도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한 배 선교사가 내린 결론은 어느 사회에서나 관심이 많은 자녀교육 문제를 교회가 책임지자는 것이다. 배 선교사는 현재 4개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개척과 함께 어린이 사역에 관심을 기울였다. 주중 유치원과 학교 운영으로 어린이들을 교회에 모으는 한편 이들의 부모를 교회로 이끄는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1996년 설립돼 올해 법인체로 등록된 사랑의 학교(Prem School)는 4개 교회 어린이 3백20여 명이 출석하는 학교로 성장했다. 이 학교에 대한 부모 특히 어머니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 학교를 찾은 어머니들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성인 배 선교사의 몫이다. 이로 인한 교회성장은 차곡차곡 열매맺고 있다.
앞으로 배드보라 선교사는 북인도 무슬림과 힌두교도 전도를 위한 교회개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서도 여성에 관심을 기울인 배 선교사의 사역은 계속될 것이다.
윤마리아 선교사(C국)
남녀평등사상 강한 현지 분위기 십분 활용
C국의 상공업 도시 S시에서 사역하고 있는 윤마리아 선교사는 8년째 선교사역에 몸담고 있다. 7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뒤늦게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공부했다. 남편인 권요셉 선교사와 함께 협력하고 있는 윤 선교사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제자훈련 사역. 현재 5개의 영성훈련센터를 비롯, 6개의 개척교회까지 모두 11개에 이르는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노방전도나 관계전도를 통해 훈련센터로 연결된 현지인들은 기도·말씀·전도·섬김 훈련을 통해 신앙과 인격을 연마하고 현지인 사역자로 거듭나게 되는데, 7명으로 시작했던 훈련센터는 이제 1천명의 전도자 양성을 목표로 삼을 만큼 성장했다.
C국은 남녀평등 사상이 확고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저항감이나 경계심이 덜하다. 현지인의 경우 여성사역자가 50%를 차지할 정도라서 여성사역자가 활동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세심함과 감수성을 발휘해 남성사역자가 놓치는 부분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이 마음의 빗장을 쉽게 푼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지인 여성사역자나 사모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윤 선교사는 소명과 정체성 없이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더불어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철저히 준비할 것을 후배 여성사역자들에게 조언한다.
오남식 선교사(우간다)
여자이기 앞서 순복음 선교사라는 정체성 확립
<제28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에서 상영된 ‘선교특집 순복음 스크린’을 통해 많은 성도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오남식 선교사는 아프리카 우간다 원주민들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
독신여성사역자인 오남식 선교사가 낯선 원주민 땅에서 중점적으로 하는 사역은 교회개척과 제자훈련. 교회를 세우면 훈련된 현지 사역자에게 물려주고 또 다른 교회개척에 나서는 것이 그녀의 몫이다.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파송된 후 6년 동안 키보가와 호이마 지역에 2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20개의 지교회를 세웠다.
여성으로서 홀로 낯선 땅을 다니며 교회를 개척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히려 더 담대하게 나갈 수 있었다고 전하며 섬세한 사역과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편리함을 독신 여성사역자로서의 장점으로 들었다. 오남식 선교사는 다음세대를 이끌어 갈 차세대 사역자 발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앞으로 후진양성에 더욱 주력할 방침이다.
그녀는 여성사역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여자라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당당해야 할 것’과 ‘하나님의 뜻이 외롭고 소외된 선교지에서 당신을 통해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을 강조했다. 어려울 때마다 기도를 늦추지 않고 의지를 다시 세웠다는 오남식 선교사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데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김희자 사모(필리핀)
여성의 사회진출 활발, 사모 역할 중요
95년 필리핀으로 떠난 김희자 사모. 남편 송성호 선교사의 비전에 무조건 순종했지만 처음에는 언어소통이 안돼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한다. 차츰 현지상황에 적응해나가면서 김희자 사모의 역할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필리핀은 여성 사역자들에게는 좋은 풍토다. 여성교육을 장려했던 스페인 지배자들의 오랜 전통이 남아 지금도 살림하는 남편, 일하는 아내들이 이곳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따라서 사모들의 적극적인 복음활동이 목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김희자 사모 역시 동역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신학교와 유치원을 운영하기에 학부모로서 성도들과의 접촉점이 많은 점을 활용, 전도에 주력하고 있다.
김희자 사모가 주력하는 전도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거절을 모르는 그들의 특성상 긍정적 대답만으로는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오게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교회에 오겠다는 새신자 집을 일일이 방문해 함께 교회에 오는 것이다.
교회를 개척해 어느 정도 성장하면 현지 사역자에게 맡기고 개척을 해 지교회만 4곳이다. 하지만 이 일도 내년에는 좀 달라진다. 내년 3월 12명의 신학생이 졸업, 교회를 내주고 개척에 나섰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졸업생 파송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5곳을 목표로 현재 좋은 개척지역을 기도로 물색중이다.
최조이 사모(U국)
조선족 여인 대상 제자화 교육에 중점
여성들의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중동 U국에서 최조이 사모가 중점적으로 벌이는 사역은 조선족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많은 조선족 내지 한족 여성들이 중동지역으로 유입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유일한 안식이 되는 것은 복음 뿐이라는 결론에서 내려진 결단이었다. 벌써 3년째 이 사역을 전개하고 있는 최 사모는 매주 한 차례 조선족 여인들과 모임을 갖고 1시간 동안은 성경공부를, 1시간 동안은 집중적인 기도를 한다.
교육 내용은 처음 6주 동안은 새신자 교육을, 그 뒤 52주 동안은 제자양육 교재를 활용한 성경공부를 진행한다. 이 때 이들이 어디를 가든 잊어버리지 않도록 8∼10곡 정도의 찬양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최 사모의 독특한 교육 방법이다.
조선족들의 변화에 성령의 강한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는 최조이 사모는 선교사 사모의 전문적인 사역을 강조한다. “여성들의 고민이나 문제는 여성들만이 이해하고 조언해 줄 수 있다. 남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사모가 채워줄 때 선교는 극대화될 수 있다”고 전한다.
최 사모는 앞으로 선교영역을 확대해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사역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