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문 성도 (성북성전)

불의의 대형참사 속에서도 구원함 받아

 지난 연말의 일이다. 새해를 눈앞에 둔 12월 29일, 그날 나는 일하던 회사에서 의뢰받은 영구차 운전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장지가 지방이라서 우리 일행은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새벽 5시쯤 되어서 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차 엔진에서 ‘푸드득’ 소리가 나더니 시동이 꺼지고 차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유족들이 힘을 합해서 갓길에 차를 밀어놓고 수리하기 시작했다. 엔진을 살펴보니 연료 밸브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연료를 빨아들이는 관이 완전히 얼어붙어서 엔진에 연료공급이 안되는 상태였다. 일단 얼어붙은 관이 녹아야 어떻게 수리를 시작할텐데 한겨울 새벽이라 손써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차에서 내려 차를 밀면서 시동을 걸려고 했는데 평지인데다 대형차라서 그런지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하다가 스타트 모터까지 고장나 버려서 이제 차는 내 힘으로는 고칠 수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정비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날은 몹시 추웠다. 난방도 되지 않는 차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자니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바깥은 허허벌판이라서 바람을 피할 곳도 찾기 힘들었다. 고속도로 아래를 살펴보니 완만한 경사 아래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남자들이 일단 그쪽으로 내려가서 불을 피워 몸을 녹일 방도를 찾기로 했다.
 조심조심 도로 아래로 내려간 남자들은 불을 피울 나뭇가지를 모아서 한곳에 모였다. 모닥불을 피우고 나니 좀 견딜만했다. 이제 차 안에서 기다리는 여자들을 부르기 위해 막 도로 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대형 이삿짐 운반차가 가드레일을 이미 뚫고 지나서 우리가 서있는 곳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위험해요’ ‘피해요’라고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이삿짐 차는 우리를 덮쳐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에 부딪쳤다고 생각한 순간 정신을 잃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이삿짐 차는 저만치 내려가서 멈춰있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켜 보니 무릎과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생명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 이미 그 자리에서 숨진 상태였다. 이삿짐 차에 가보니 상황은 너무나 끔찍했다. 한 명이 타이어 밑에 깔려있었고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사람이 여기저기 보였다. 사라진 줄 알았던 또다른 한명은 차가 미끄러지면서 생긴 흙더미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다. 내 바로 옆에서 불을 쬐던 사람도 차에 받혀서 숨을 거두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삿짐 차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갓길에 세워둔 우리 차를 들이받으면서 브레이크도 미처 밟지 못한 상태로 20뻍 가량 우리 차를 밀고 가다가 다시 휘어져서 도로 아래로 돌진한 것이었다. 그 차는 바로 내 앞으로 밀려 내려왔고 불을 쬐던 사람들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어’ 소리도 못 내고 그대로 목숨을 잃는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나는 차 앞 범퍼 모서리에 몸이 튕겨서 붕 떴다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차에 부딪친 것을 보고는 당연히 내가 죽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무릎과 갈비뼈를 다쳤을 뿐 큰 이상없이 살아났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목숨을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함께 당연히 죽을 위치에 있었던 나를 들어서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사고를 당하고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는 현장을 목격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물로 주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큰 은혜도 감격스럽지만 일상의 작은 은혜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고 감사했다.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천군천사가 나를 둘러싸고 나를 지키고 있음을 느꼈다.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크고 능하신 오른팔로 나를 감싸주시고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직접 체험하고 보니 이전의 신앙과 사고 이후의 신앙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인생의 값어치를 깨닫고 더욱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다해 전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