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그 십계명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성도들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채
생활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에 본 지에서는 성도들의 올바른 신앙관 고취를 위해 10주간에 걸쳐 십계명이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살인하지 말지니라”
<성경적 의미> 생명 경시는 하나님 주권에 도전
6계명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판단 기준
삶의 근원 예수 그리스도 전파에 힘써야
십계명 중 여섯번째 계명은 아무런 수식이나 내용 설명 없이 단지 “살인하지 말라”는 간결한 명령문으로만 되어 있다. 그러나 제6계명은 짧지만 대단히 광범위한 사회 윤리적인 문제들과 관련되어져 있다.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세기 9장 6절)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또 가장 거룩한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께 속하여 있으므로 거룩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생명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생명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분의 고유한 권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을 침범한 살인자는 ‘하나님의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이라’고 하였다(출애굽기 21장 14절).
그러나 구약시대에 사형제도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데는 이 계명을 적용하지 않았다. 제6계명이 가르치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여 살상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삼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생명을 허락하시고 거두어 가시는 것도 하나님에게 속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속한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제6계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든 합리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생명과 남의 생명을 보존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의하게 우리 자신의 생명이나 이웃의 생명을 빼앗거나 해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 계명이 단지 직접적인 폭력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모든 정당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멸하는 어떤 것이든지 금하는 것이 이 계명의 취지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음을 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에 길에 있는 자들이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한다. 만일 우리 이웃이 멸망의 길에 있는데도 그를 경고할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계명을 가장 악하게 범하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제6계명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해치지 말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하여서도 살인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치 않고, 그들이 궁핍할 때 돕지 아니하므로 생기는 불행도 하나님께서는 원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광범위한 범위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사람의 목숨이 매우 경시되고 있다. 신문을 펼쳐 보면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가 빠진 날이 없을 정도로 생명 경시 풍조는 날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더구나 우리 주변에는 말로써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실제로 살인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통해서 보면 살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분명히 교훈하셨다.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장 21, 22절)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하면 미움이나 분노를 품은 마음의 상태는 곧 살인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 행위로 살인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말로써도 살인하지 않도록 말조심하고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생길 때에는 즉시 그러한 생각을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종류의 행위에 의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도 불공정하게 대해서는 안 되며 누구를 공격하거나 폭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속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친구든, 원수든 간에 모든 사람을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으면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야 하며, 최선을 다하여 관대해지려고 애를 써야 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실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언약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며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제6계명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생활 속의 6계명> 생명은 하나님께로 온 선물
언약의 신앙공동체로서의 본분지켜야
인격과 품위 손상 등도 넓은 의미의 생명 파괴
제6계명은 부정형을 사용하여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의도적이든 우연한 사고로든 아무튼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며 그것은 생명을 파괴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명시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볼 때, 이 계명은 신앙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인 줄 깨닫고 그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두신 질서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이 정의하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살인한 후에도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복적인 살인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표를 주셨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인간의 생명을 보호 보존하면서 우리의 삶을 살고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또 인간 생명을 해치거나 그 품위를 손상시키는 대신 그 생명을 잘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도 제6계명을 해석하실 때 그 안에 죽음을 야기하는 행위 즉 문자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닐지라도 인격을 해하고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며 사람을 낙담시키는 행동과 태도도 포함시켰다. 이는 이 계명의 정신이 더 이상 생명을 보호하는 것에만 귀착되지 않으며 그 속에는 생명을 향상시키고, 생명에 기여하며, 생명을 고무시키고 격려하는 것도 포함됨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삶의 첫번째 임무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이라는 선물을 감사히 여기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기 자신을 귀히 여기고 다른 사람들 또한 우리의 형제요 자매로 이 세상에 가치있는 존재들로 귀히 여겨야 함을 뜻한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우리에게 가치있고 귀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그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좀더 배려하게 된다.
따라서 제6계명을 생각할 때 “내가 언제 사람을 죽였나? 아니, 난 절대 그런적 없어. 그러니까 이 계명은 내게 해당되지 않아”라고 단순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그 계명의 정신에 입각해 우리가 서로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적대적인 감정과 태도로 대함으로써 서로를 무너뜨리는 대신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다 낫게 하고 있는지 말과 행동에 앞서 생각해 보자. 그리고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포용해보자. 이렇게 될 때 이 계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긍정적이며 건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이란 폭력을 행치 않는 것뿐 아니라, 동정심과 친절을 더욱더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이럴 때 우리는 비로소 제6계명을 가장 잘 지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신앙 공동체 일원으로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계명이 도전하고 있는 바이다. 서로의 생명을 보호할 뿐 아니라 친절하게 서로를 축복함으로써 이 계명을 실천하도록 하자.
박재형 기자 jhpark@fgtv.or.kr
<극과 극 십계명에 비친 인물>
요셉 , 복수 대신 용서 선택한 사랑의 절정
요셉은 ‘그는 더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라헬의 첫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이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해석하는 능력과 사무관리 능력을 주셨는데 해와 달과 별, 열한단의 곡식단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말함으로써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사게 되었다(창 37:3-11). 날로 더해가는 형들의 질투 때문에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후 애굽의 노예로 상인에게 팔려갔으나 많은 역경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성실하게 믿음을 지켜나가 드디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다.
애굽의 7년 풍년과 흉년을 지혜롭게 다스린 요셉 앞에 가나안 땅에서 기근으로 고생하던 형제들이 곡식을 사러 온다.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했으며 결국에는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만난 요셉은 충분히 형들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자비로 용서한다. 식량을 가득채워주고 가족 모두를 애굽 고센땅에 이주시켜 좋은 땅을 분배해 주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에게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 용서와 사랑을 베푼 요셉은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아 많은 복을 누리게 된다. 1백10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요셉은 영화로운 삶을 누렸고 그 후손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열두지파 가운데(에브라임·므낫세) 두 지파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미나 기자 mnlee@fgtv.com
하만, 유대민족학살 계획 실패 후 공개처형돼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시절, 아각사람 하므다다의 아들인 하만은 페르시아의 황제 아하수에로의 총리 대신이었다. 천하 제일의 제국 페르시아의 총리가 된 하만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아하수에로 황제 외엔 감히 그 앞에 설 자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유독 모르드개라는 유대인이 그에게 공손치 않은 것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모르드개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하만은 유대인들을 모두 학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황제에게 청하여 전국에 조서를 내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일 목적으로 신하들을 시켜 오십규빗(약 25m)이 되는 장대를 세워놓기까지 한다.
이에 에스더 왕비가 비장한 각오로 황제에게 나아가 자기 민족을 구해줄 것을 간청하며 하만의 유대인 학살 계획의 진상을 밝혔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된 하만은 황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에스더를 붙잡고 목숨을 구걸했다. 그런데 황제로부터 왕비를 겁탈하려는 것으로 오인받아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워 놓았던 바로 그 장대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악한 마음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에 대해 교훈을 주고 있다.
윤은정 기자 ejyun@fgtv.com